자유한국당 곽상도 국회의원이 김지태(1908~1982)가 친일파라 하기에 자서전을 읽었다. 1976년 한국능률협회에서 펴낸 <나의 이력서>였다. 친일파라 할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1927~32년 동양척식 부산지점에서 일했고 농토 2만 평을 특혜 불하받은 것이 전부였다. 이게 친일이면 그가 모셨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는 무엇일까? 일본에 충성 혈서를 썼고 만주군관학교·일본육사를 다녔고 일본 괴뢰 만주국의 육군 소위로 복무했다.

김지태는 박정희의 1961년 5·16쿠데타 이후 부정축재로 몰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구속된 적이 있다. 군사재판에 넘겨졌으나 자신이 갖고 있던 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한국문화방송과 부일장학회를 5·16재단과 5·16장학회로 넘겼더니 바로 공소 취하로 풀려났다.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고 국가권력을 동원한 끝에 재산을 빼앗은 것이다.

<나의 이력서>에는 1960년 3·15 당시 상황도 적혀 있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 군의 시체 사진이 부산일보의 특종 사진 기사가 되어 마산시민은 물론 전국민의 분노를 절정에 이르게 하였다." 이는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지태는 그 이상이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궐기가 마산에서 파출소를 습격해서 기물을 부수고 불을 지르자 경찰관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아 사상자가 생겼다. 부산일보 사장실에는 문화방송의 마이크가 설치되고 나의 진두지휘하의 비상체제로 옮겨져 있었다. 방송원은 밀폐된 부산일보 사장실이라는 걸 한 사람 알지 못했다. 제일보가 나가자 채 1분도 못 돼서 일본의 NHK가 우리 방송을 땄다. 나중 경남경찰국장이 방송국을 거쳐 나에게로 찾아왔으나 그땐 이미 방송이 끝날 무렵이었다."

박정희는 석 달 전부터 부산군수기지사령관으로 와 있었다. 박정희는 김지태의 이런 행적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자신의 통치에 당시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은 절대적인 걸림돌이라 여겼을 것이다. 박정희가 김지태에게서 빼앗은 것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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