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 문화·질문없는 직장
적응하기보다 바꾸는 법 제안

▲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지음
                            ▲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지음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고 팀 쿡이 애플의 새로운 CEO가 되었을 때 한국의 많은 초등학생이 아빠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빠, 스티브 잡스는 자식이 없었어?"

<88만 원 세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경제학자 우석훈의 신간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에서 저자는 이때를 한국의 경제학자로서 가장 슬프고 가슴 저린 순간으로 기억한단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 '직장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던진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대한민국식 '직장 갑질' 현상과 낙하산 문화, 기업과 대학은 물론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자산인 교회도 전부 자식에게 물려주는 세습 자본주의 등의 사례를 들고 사회과학 언어와 경제의 논리로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인 강원랜드의 2012~2013년 신입사원 최종합격자는 518명이었다. 신입사원 518명 '전원'이 취업 청탁 대상자였음이 밝혀졌다. 기업 역시 '회장님' 아들·딸은 물론이고, 온갖 '낙하산'들이 차고 넘친다.

조현민의 물컵 투척 사건으로 대표되는 대한항공 조씨 일가의 횡포,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로 대표되는 아시아나항공 회장의 여승무원 성희롱 사건, 간호사들 사이의 괴롭힘인 '태움'이라는 현상과 공공과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갑질'로 대표되는 직장 내 비민주적 관행은 이제 대한민국 고유의 것이 되었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지만 기업은 여전히 외딴섬처럼 '민주주의 예외지역'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의 타점은 먼 데 있지 않다. 출근이 즐거운 직장, 그건 낙하산 타고 내려온 고위직 간부들에게나 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출근이 덜 괴로운 직장, 이건 굉장히 낮은 수준의 타점이다. 출근이 덜 괴로운 직장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직장 민주주의'를 위한 한 걸음을 내딛자고 독려한다.

감사 없는 감사위원회, 존재감도 영향력도 없는 사외이사 등 제도적 문제점을 꼬집고, 서울우유·카카오·여행박사 등 직장 민주주의를 꽃피운 기업들을 소개한다.

'민주주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을까?'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고 작은 자신감을 얻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이런 질문을 오랫동안 받았다. 밥 먹여주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빌어먹을'이라는 소리가 입에서 턱턱 튀어나오는 상황 정도는 막아줄 수 있다. '더러워서 그만둬야겠다'는 지저분한 퇴사 이유 정도는 피하게 해줄 수 있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활 민주주의 아니겠는가? 그 정도 조건을 만드는 것이 최순실을 쫓아내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274쪽)

'직장 민주주의'는 복지처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복지처럼 큰 비용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그냥 하면 된다.

"팀장님, 이거 왜 하는 건데요?"라고 반문할 수 있는 회사, 질서정연한 바보짓에서 빠져나온 인간의 얼굴을 한 민주주의 말이다.

많은 사람이 뜻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 저자는 '직장 민주주의'를 더 많은 사람이 입에 올리면 세상은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직장에서 시달리면서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없다면 결국 이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이 책은 지금 그때가 왔다고 이야기한다.

한겨레출판. 278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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