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 우리로 얽힌 사람
불합리한 구조에 표류 일쑤
복잡한 내면에 힘겨워하는
자아 키워줄 5개 소설 담아

단숨에 읽힌다. 황유미 작가의 소설집 <피구왕 서영>은 가족과 학교, 회사 그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법한 갈등과 불안, 그러면서도 어쩌지 못했던 감정을 건드리며 빠져들게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늘 어떤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 독립출판물로 소량 발매한 후 동네 서점에서 소문을 타고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된 <피구왕 서영>은 나와 네가 우리로 얽혀 삼켜야 했던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 보는 5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다양한 형태의 집단 내에서 개인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품었던 질문에서 글을 시작했다고 밝힌다. 표제작인 '피구왕 서영'에서 4학년 서영이는 전학을 가게 된다. 전학이 익숙한 서영은 새로운 곳에서 평범하고 튀지 않으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무리를 찾는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과 다른 성향의 집단은 요령껏 피하고 적당한 곳을 찾는 데 늘 성공했던 서영은 이번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전학 첫날, 가장 피하고 싶던 집단의 친구들로부터 함께 피구를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여기서 서영은 피구를 제법 잘하는 아이로 인식되고, 교실 안 권력의 정점에 있는 친구들의 무리에 끼게 된다. 다만, 일련의 상황들이 서영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것이 문제다.

'피구왕 서영'은 자연스레 학창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굳이 '끄집어낸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딱히 좋지 않은 기억도 없는 듯하지만 애써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절이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우리는 탐색전을 벌인다. 점심때마다 같이 밥 먹을 친구를 찾아야 한다. 화장실도 같이 가고, 과학실도 같이 갈 친구 말이다. 선생님은 종종 선심을 쓰시듯 원하는 짝을 적어 내게 하고 짝 바꾸기를 해주지만 그때마다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불안으로 눈치를 살펴야 했다. 내가 왕따가 되지 않으려고 왕따 친구를 애써 외면하거나 불합리한 구조를 묵인해야 했다.

체육 시간 단골 메뉴였던 피구는 어떤가. 좁은 사각 안에서 편을 나누고 누군가를 공으로 맞히고 죽이는 생존 게임.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죽기라도 하면 되레 패배의 짐을 혼자 떠안으며 느껴야 했던 고립감이라니.

서영이도 어느 순간 피구가 재미없어진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현지의 눈에 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상대를 죽이고 또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 때론 눈치껏 져주기도 해야 한다. 피구 왕에서 피구 노예가 된 것 같다.

"피구는 죄가 없다. 즐거운 피구를 피구답게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문제다."

서영이는 알게 된다. 피구는 피구일 뿐.

학교는 물론 생애 첫 집단인 가정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장 안전한 집단이 아니라, 가장 벗어나고 싶은 감옥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물 건너기 프로젝트', 다수의 시선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홀가분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와 '까만 옷을 입은 여자', 그리고 당신만 예민한 건 아니다, 예민한 우리는 생각보다 많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쓴 '알레르기' 등 모든 이야기는 관계 속의 나를 다독인다.

"집단에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든 개인, 동지들에게 이 반성문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작가의 프롤로그 마지막 문장이 참 따뜻하다.

빌리버튼, 228쪽,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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