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범 경상남도 호찌민사무소장
교민·기업 지원업무 맡아
인간관계 중시 문화 강조
정밀기계 시장 선점 조언

베트남 살이 3개월. 이제 음식에서 고수를 빼달라 요청하지도 않고, 베트남식 영어 듣기도 제법 익숙해졌다. 친구도 사귀었고, 결이 돌보는 일도 할만하다. 그런데 다시 원점인 듯하다. 미터기가 있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기계를 켜지 않고 돈을 더 달란다. 화장품 봉인스티커가 떨어져 있어 점원에게 새 제품을 달라고 했더니, 테이프를 붙여서 준다. 호텔에 셔틀버스 자리가 있는지 확인한 후 방을 예약했다. 잠시 후 직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No seat.(좌석이 없다.)" 취소도 안 되는 방인데. 멘붕이다.

다 그만두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신에게는 아직 한 달이 남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베트남 살이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로마 가면 로마법 따라야 = 찾아간 곳은 '경상남도 호찌민사무소'. 김병범(51) 소장이 후배 요청에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건물 안내판에 적힌 '경상남도' 네 자를 보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왜 이제야 왔을까.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말이라 한산한 사무실 오른편에는 도내 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이, 왼편에는 호찌민 시내가 펼쳐졌다. 명함을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출국 전 습관처럼 명함을 챙겼지만 정말 쓸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아, 얼마 만에 듣는 사투리인가. 다짜고짜 하소연을 늘어놨더니 그가 '다 안다'는 듯 허허 웃는다. "그래도 6개월까지는 재밌어요." 의미심장하다.

김 소장은 베트남 생활 2년 6개월 차다. 2017년 1월 사무관으로 승진하면서 발령이 났다. 사무소 직원은 김 소장과 현지인 직원 2명, 단 3명이다. 지금은 운전까지 가능하다는 그도 처음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첫 집이 남향 제일 꼭대기층이었어요. 경치가 진짜 좋았거든요. 덜렁 계약을 했는데 지내보니 볕이 너무 세요. 나중에 알았는데 현지인은 모두 북향에 살더라고요."

그것뿐이겠나. 현지 음식을 잘 먹는 편인 그도 메뉴 사진이 없는 로컬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데 1년이 걸렸단다.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만의 살아남는 요령을 터득했다.

"일할 때도 답답한 부분이 있었죠. 초반에는 직원을 새로 뽑아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친구들이 여기서는 엘리트더라고요. 베트남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를 이곳에 맞춰보기로 했습니다."

가령 내일까지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일주일, 열흘 여유를 두고 서류를 준비한다. 한 번 확인했을 때 문제가 생긴다면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참 어려운 말이다. 그래도 그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 김병범 경상남도 호찌민사무소장. /김해수 기자
▲ 김병범 경상남도 호찌민사무소장. /김해수 기자

◇인도차이나반도의 경남도청 = 그가 일하는 호찌민사무소는 2003년 6월 처음 문을 열었다. 각종 동향을 파악하고 시장 정보를 제공함은 물론 국제교류, 상설 전시관·상담장 운영, 도정 홍보 등 다양한 임무를 띠고 있다.

8년여 동안 도내 기업의 베트남 시장 입성을 돕던 사무소가 2011년 문을 닫았다.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으로 국외 진출이 분산되자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시장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U턴을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던가. 교민들 요구도 쇄도했다. 호찌민사무소는 폐쇄 1년 11개월 만인 2013년 11월 재개소했다.

현재는 7개 광역지자체가 호찌민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 중 절반가량이 문을 연 지 2~3년밖에 안 된 '신입'이다. 경남도 사무소의 역사가 독보적으로 유구한 배경에는 '태광'이 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며 신발 산업이 위기를 맞는다. 태광은 고민 끝에 1994년 국내 1호로 베트남 진출을 한다. '태광비나'가 동나이성에 자리를 잡자 도내 관련 업체들도 잇따라 옮겨갔다. 자연스럽게 이들을 지원하고자 호찌민사무소가 만들어졌다.

경남도가 1996년 동나이성과 자매결연을 하는데 박연차 회장 역할이 컸다는 후문. 경남도와 동나이성은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봉사활동, 청소년 문화교류 등을 이어가고 있다.

도는 호찌민 등 6개 국외사무소를 두고 있다. 호찌민사무소는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유일한 경남도 사무소로 베트남뿐 아니라 주변국 이슈에도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산청중·고교생 8명이 캄보디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현장에도 김 소장이 있었다.

◇장밋빛 환상 버려야 = 사무소 문을 두드리는 곳은 대부분 네트워크와 정보가 부족한 소기업, 자영업자들이다. 업종은 식품, 기계, 가공업, 항노화, 바이오, 화장품 등 없는 게 없다.

호찌민 지역에 한국 기업 3000여 개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자영업·식당까지 하면 그 수가 어마어마하지 싶다. 경쟁이 치열하니 안타까운 일도 많다. 특히 농수산식품 수출 분야가 그렇다.

"쉽게 말하면 전체가 틈새시장이에요. 베트남 농산물도 신선하고 맛있고 저렴한데 왜 한국 제품을 사먹겠습니까. 예를 들어 배를 판매한다고 하면 베트남에서는 볼 수 없는 정말 크고 당도가 높은 최상품이어야 팔리겠죠. 그 정도 과일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파이는 작은데 너무 많은 업체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어요."

자영업도 녹록지 않다. 성공률이 5%로 100명 중 5명 정도만 살아남는다. 한인타운인 '푸미흥'은 6개월마다 가게가 바뀌기로 유명하다. 베트남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식당을 할 바에 상남동에 가게를 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먼저 임대료가 정말 비쌉니다. 호찌민 시내에 월세가 5000달러(약 600만 원) 넘는 곳이 수두룩해요.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30%씩 50%씩 오릅니다.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하는데 직원 1명에게 주는 급여만 봤을 때는 그렇죠. 6분의 1 정도. 그런데 한국 직원 1명이 할 일을 3명이 합니다. 그러면 실제로는 절반밖에 안 돼요. 거기에 한국이었다면 들지 않을 각종 비용까지. 만만치 않습니다."

◇정밀기계 분야 진출 적기 = 이미 많은 분야가 레드오션이지만 한국 기업이 눈여겨볼 분야도 있다. 정밀기계, 기계부품 분야다. 5~10년 사이 매년 6% 이상 성장했다고.

"최근 하노이에서 열린 정밀기계·부품 수출상담회를 다녀왔는데 바이어들 눈빛부터가 달라요. 이전에는 한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 제품에 뒤처졌습니다. 이제 그 기계들 내구연한이 지나가는 시점이에요. 중국 제품을 써본 이들 사이에서 '차라리 한국산 중고가 낫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또 박항서 감독과 한류 영향으로 한국산 프리미엄이 있어요. 그걸 활용해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분야든 베트남에 진출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철저한 조사와 꾸준한 신뢰 쌓기다.

"준비한 만큼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창원에 있는 사람이 부산에 가게를 차린다고 해도 수시로 가서 시장조사 하고 주변 상권 분석해야 하죠. 의사소통도 어렵고 문화도 다른 베트남에 진출하려면 2배, 3배로 뛰어야 합니다. 또 중국에 '콴시'가 있듯이 베트남에는 '꽌해'가 있어요. 전쟁을 얼마나 많이 한 나라입니까. 친밀한 관계를 만들려면 3~5년 걸려요. 박람회에서 명함 교환을 했다면 메일이라도 보내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김 소장은 내년 1월 베트남 생활을 접고 귀국길에 오른다. 마지막까지 맡은 일을 잘 마무리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도내 기업들 진출이 늘면서 사무소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습니다. 호찌민과 김해공항을 오가는 비행기 좌석이 대부분 만석이에요. 그만큼 임무가 막중한데, 남은 기간 초심을 잃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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