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호출에 요금조작 없는 동남아의 우버
대중교통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 편리한 카풀 서비스
1인용 바이크부터 승합차까지…사칭 사기 일어나기도

호찌민 시내 쇼핑몰 입구 풍경은 복사한 듯 똑같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누구랄 것도 없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얼핏 보면 '포켓몬 고' 성지인가 싶다. 그런데 다들 기다리는 이가 있나 보다. 차량이 한 대 도착할 때마다 기대 섞인 눈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든다. 은행 창구에서 '딩동' 대기번호 알림 음이 울릴 때와 흡사하다. 차량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한 팀이 기다림을 끝내고 차량에 올라탄다. 나머지는 익숙하다는 듯 다시 휴대전화로 눈길을 돌린다. 택시도 아닌 일반 차량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공유차량 서비스 그랩(Grab) 이용자다.

▲ 호찌민 시내 백화점 타카시마야 사이공센터 입구. 그랩 이용자가 휴대전화로 호출한 차량의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뒤편에 그랩 바이크 이용자들도 보인다. /김해수 기자

◇동남아 대표 공유차량 서비스

그랩을 흔히 '동남아시아의 우버(Uber)'라고 한다. 음, 사실 우버를 이용해본 적이 없어서 썩 와 닿진 않는다. 우리에게는 올해 초 택시업계와 갈등으로 서비스를 종료한 '카카오 T카풀' 같은 서비스라고 하면 이해가 더 빠르겠다. 그랩 역시 일반인 운전자가 자신 차량으로 카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랩은 말레이시아 출신 청년이 만든 공유차량 업체다. 말레이시아를 처음 방문한 친구로부터 택시에 대한 불평을 들은 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2012년 그랩의 전신 '마이택시(My Teksi)'를 선보였다. 현재는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를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8개국에서 이용할 수 있다. 멋쩍게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상황을 사업으로 연결해 6조 원 이상 가치를 인정받는 회사를 만들다니. 될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

나 역시 베트남 전화번호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그랩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았다. 베트남은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아 외국인에게는 택시가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이마저도 바가지요금은 나중 일이고, 당장 도착지를 설명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랩은 말 그대로 '신세계', '빛과 소금'이다.

현재는 그랩이 베트남 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2년 전 그랩은 글로벌 기업 우버와 한 차례 큰 전쟁을 치렀다. 출발은 비슷했다. 그랩은 우버의 높은 인지도에 현지화로 맞섰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현지 특성을 반영해 '현금 결제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 오토바이에 익숙한 베트남인을 위한 '바이크 서비스'도 추가했다.

결과는 현지인으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얻은 그랩의 승. 지난해 4월 우버가 동남아지역 판권을 그랩에 매각하기로 했다.

◇바가지요금 걱정 없어요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전화번호로 계정을 등록하면 준비 끝. 베트남 유심을 이용하지 않을 거라면 출발 전 한국 전화번호로 계정을 만들어 오면 된다. 참 쉽죠?

첫 화면에서 '차(Car)'를 선택하면 내 위치와 주변 그랩 차량이 뜬다. 정확한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설정하면 운전기사를 탐색한다. 매칭이 되면 운전자 얼굴과 함께 차종, 차량 번호가 뜬다. 여기까지는 '카카오 T택시'와 거의 같다.

다른 점이라면 호출 전 목적지까지 요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랩의 차량 호출 서비스는 크게 일반인 차량을 이용하는 '그랩 카', 기존 택시를 호출하는 '그랩 택시',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그랩 바이크'로 나뉜다. 그랩 택시를 제외한 모든 차량은 금액이 고정돼 있다. 러시아워에 차가 옴짝달싹 못해도 마음이 편안한 이유다.

그렇다고 운전자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출퇴근 시간에는 그만큼 할증이 붙는다. 비가 내릴 때면 요금이 기존의 2~3배로 뛴다. 요금 책정은 철저히 수요와 공급 원칙에 따른다. 목적지를 추가하면 돌아가는 만큼 요금이 오르고, 이용 차량이 4인승이냐 7인승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요금으로 실랑이할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차량 이동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수증은 요청하지 않아도 등록한 이메일로 보내주는 센스!

그랩이 택시보다 저렴한 편이지만 언제나 유리한 건 아니다. 가까운 거리를 가거나 특히 비가 올 때는 일반 택시를 타는 게 낫다. 아니 타야 한다. 이전 편을 복습하자면 '비나선(VINASUN)', '마이린(MAILINH)'을 제외한 베트남 택시는 눈길도 주지 말자.

▲ 그랩차 내부 모습. 택시가 아닌 일반 차량인데 조수석 뒤편에 승하차 주의사항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다. /김해수 기자

◇그랩카 운전자는 부자?

하루는 그랩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 차로에서 선글라스를 낀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무려 미러 렌즈다. 펄이 섞인 '코발트 블루' 색상 혼다 차였는데 하도 반갑게 인사하기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차량 번호를 보니 내가 기다리던 그랩 차량이다.

그랩카 운전자들은 특징이 있다. 바로 여유와 자신감.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에서는 차 값이 굉장히 비싸다. 승용차를 구입하면 세금이 차 가격의 약 100%다. 다시 말해 차 값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 가령 한국에서 2000만 원짜리 차를 베트남에서 구입하려면 4000만 원이 든다. 대졸자 평균 임금이 40만 원가량이라는데, 한국에서도 타기 어려운 고급 차량을 만날 때면 운전자의 정체가 궁금하다.

반면 부의 상징인 차를 이용해 그랩 운전자를 사칭, 사기를 일삼는 이들도 있다. 목표물은 주로 공항에서 두리번거리는 여행객. 수법은 이런 식이다. 역동적인 공항 풍경에 정신을 빼앗긴 이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그랩 기사라고 소개한다. 상대가 제안하지도 않았는데 인심 쓰듯 그랩 가격으로 태워주겠다며 자신의 차로 유인한다. 물론 뻥이다.

이후 몇 배로 비싼 바가지요금을 요구하기도 하고, 가진 금품(?)으로 대신하라고 하기도 한단다. 이쯤 되면 사기꾼이 아니라 강도다. 그러니 공항에서 누군가 먼저 접근하거든 얼른 자리를 피해야 한다. 조심성 많은 남편 역시 공항에서 잠시 방심한 틈에 사기를 당할 뻔했단다. 알고도 당하게 하는 것이 기술이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 그랩 앱에서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설정하면 요금이 뜬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요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바이크는 4000여 원, 4인석 차량은 8500여 원이다

◇혁신 기술의 딜레마

외국에 있으니 한국 소식이 더 궁금하다. 공유차량 서비스를 신나게 누리며 지내던 어느 날. 한국에서 렌터카 서비스 '타다'를 반대한 택시기사가 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베트남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과 달리 이곳은 이미 공유차량 서비스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갈수록 기존 공공버스·택시 업계의 피해 호소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랩은 카풀이나 타다와 차원이 다른, 이를테면 '공유차량 서비스 종합선물세트'다. 일반 차량 공유(카풀)는 물론, 렌터카, 식료품 등 각종 배달 서비스까지 한 플랫폼 안에서 제공한다. 그만큼 영향이 크겠다.

지난해 앞서 언급한 택시업체 비나선이 그랩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그랩에 48억 동(2억 4000만 원)을 손해배상 하라는 1심 판결을 내렸다. 그랩은 반발했으나 다낭지역 택시업계도 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베트남 당국은 공유차량 업체에 대한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그런데 그랩과 카풀, 타다를 막는다고 택시업계를 위협하는 요인이 사라질까. 기술은 멀찌감치 앞서 있고, 소비자는 다양한 서비스를 원한다. 극단적인 예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온다면? 복잡한 마음에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언젠가 만났던 택시기사님이 떠올랐다. 퇴직금으로 개인택시 번호판을 샀다고 했다. 노후 준비라고 했다.

혁신 기술과 전통 산업이 함께 사는 길은 없는 걸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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