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사르재단과 함께하는 습지 생태·문화 기행] (7) 창녕 우포늪

지난 8월 시작한 '언론과 함께하는 습지 생태·문화 기행'이 벌써 전체 다섯 차례 가운데 네 번째 일정을 마쳤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대표이사 고재윤)과 경남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한 네 번째는 지난 13일 우포늪(소벌)이 있는 창녕으로 길을 골라잡았다.

경남은행·농협경남본부·STX그룹은 자금 출연 등으로 람사르환경재단을 돕고 있다. 이번 습지 생태·문화 기행은 이에 보답하려고 마련된 프로그램으로 해당 기업 직원 자녀들이 대상이다. 청소년들에게 습지를 좀 더 체험하게 하면서 재단 홍보도 겸한다.

◇ 람사르마을로 지정된 세진마을 = 이번 네 번째 기행은 우포늪 들머리 유어면 세진마을을 둘러보는 데서 시작했다. 아침 9시 일행을 태우고 경남도청을 출발한 버스는 10시 세진마을회관 앞에 닿았다. 세진마을은 지난 5월 제주도 선흘마을(동백동산습지)과 함께 '람사르마을'로 선정됐다.

마을에는 '우포늪 왜가리' 이인식 선생님이 산다. 교사 출신인 이인식 선생은 마창환경운동연합 의장을 지내는 등 환경·생태운동을 오랫동안 벌여왔다. 그이는 세진마을을 근거지 삼아 우포늪(소벌)을 끼고 살면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을 맞아 우포늪(소벌)을 체험하게 하면서 생태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워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이인식 선생님과 두 시간 남짓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다. 우포늪따오기복원위원장이기도 한 이인식 선생은 '따오기 자연학교'도 열었다.

늪가에 앉아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아이들.

먼저 '우포늪 왜가리' 이인식 선생님과 마을을 둘러봤다. 담벼락에는 마을 주민 정봉채 사진작가의 사진들이 걸려 있고 길가에는 여러 물풀을 담은 커다란 화분이 놓여 있다. 일행은 화분에 손을 넣어보기도 하면서 마름·부레옥잠 같은 습지 식물이 들어 있으면 물이 썩지 않는 이치도 들었다.

담벼락 아래에는 곡물들이 볕을 쬐고 있었다. 우포늪 왜가리는 지나가던 할매를 붙잡아 얘기를 청했다. "이거는 팥이여. 빨갛는데 팥죽 같은 거 만들어 묵제. 옆에는 들깨여. 참깨는 참기름 짜 묵고 들깨는 국 낋일 때 집어옇어, 구수해. 노란 거는 콩이여. 메주 쑤고 된장 만들어 묵제." 아이들은 콩깍지에 싸인 콩과 팥을 눈여겨 봤다. 할매는 기념으로 몇 낱씩 가져가라고 했다.

우포늪 왜가리는 자기 집 담장 안 감나무에서 아이들이 감을 따 먹도록도 해 주셨다. 가지는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세진마을에서 아이들이 감을 따고 있다.

◇ 눈·손·귀·코·입 오감으로 누린 우포늪(소벌) = 아이들은 곧장 우포늪(소벌)으로 갔다. 아이들은 먼저 들머리 흙길을 따라가다 우포늪을 이루는 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갈래길에서 우포늪 왜가리가 일러주시는대로 손을 들어 눈대중으로 생태 자연의 높이를 가늠해 봤다. 누구는 여덟, 누구는 열둘이었다. 가장 가까운 강아지풀과 수크령 높이에서부터 멀리 양버들나무들의 여러 높이까지, 하늘을 나는 새의 높이와 착 가라앉은 물의 높이도 들어 있고 멀리 아득하게 사라져 가는 산들의 높이도 넣었다. 뭉뚱거려져 하나로 보이던 풍경이 그러고 나니 하나하나 따로 보이기 시작했다.

길섶 나무와 풀에서 잎도 만져봤다. 앞면과 뒷면을 더듬고 옆을 쓰다듬었다. 매끈매끈한 것도 있고 꺼칠꺼칠한 것도 있고 톱날처럼 오톨도톨한 것도 있다. 아울러 눈으로 살펴보고 앞과 뒤 색깔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같은 초록이면서도 같은 초록이 아니었다.

돌나물이 수북한 데서는 잎을 따서 씹어먹었다. 우포늪(소벌) 명물로 이름높은 새벽 물안개가 머금었던 물기를 촉촉히 묻히고 있었다. 씹히면서 톡톡 터지는 느낌이 좋았다. 양버들 가까운 데서는 두 귀에 한 손씩 갖다 대고 나뭇잎 바람 타는 소리를 들었다.

풀과 꽃과 곤충과 거미들을 살펴보고 있다.

쑥부쟁이랑 구절초 같은 들꽃 우거진 데서는 꽃과 벌과 나비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한창 꿀을 빨던 벌 한 마리가 실족해 떨어졌다. 그러자 우포늪 왜가리는 "벌들도 우리 생각과 달리 저렇게 떨어지는 실수를 한다. 실수했을 때는 벌들은 재빨리 털고 일어난다.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덧붙여 주신다.

전망대에서는 이제 오기 시작한 겨울 철새들을 망원경으로 봤다. 우포늪 왜가리는 탐조 기구를 몸소 설치하더니 거기에 자기 손전화를 붙여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새들을 아주 가깝게 볼 수 있도록 해줬다. 100마리 넘게 무리지어 있는 새들을 보는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다.

물에 손을 집어넣어 마름이라는 물풀의 열매 말밤(서울말로는 물밤)도 주웠다. 먹기 위해서는 아니고, 목걸이라도 한번 만들어보려고 그랬다. 아이들은 소머리처럼 생기고 양쪽으로 뿔처럼 가시가 나 있는 모습에 신기해했다.

◇ 송현동·교동 고분군과 영산 석빙고·만년교 = 창녕은 가야의 옛 땅이다. 신라 진흥왕에게 정복될 때까지 독자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를 일러주는 존재가 바로 송현동·교동 고분군이다. 목마산 남쪽 기슭에 크고 작은 고분들이 줄줄이 엎드려 있다.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에 지어졌다. 신라 고분은 평지에 있고, 가야 고분은 습지와 이어지는 산기슭에 있다. 창녕에서 가야를 이룬 세력이 신라 계열과는 다른 계통임을 일러주는 단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 여기를 찾은 까닭은 이런 역사 공부에만 있지 않다. 느낌이 더없이 아늑하고 푸근하기 때문이다. 또 위에서 아래로 보면, 읍내뿐 아니라 멀리 낙동강 건너편 산들이 넌출넌출 멀어져가는 풍경도 볼 수 있다.

영산석빙고 땅 아래 들머리까지 들어갔다가 보고 나오는 아이들.

다음 영산 석빙고와 만년교를 만날 차례다. 창녕읍에도 석빙고가 있지만 일부러 영산 석빙고를 골랐다. 바로 옆에 만년교가 있기 때문이다. 더없이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인데, 1780년 만들어진 이래 지금껏 그대로 있으면서 개울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고 있다.

영산 석빙고 또한 다른 석빙고와 마찬가지로 뒤쪽 개울을 끼고 있다. 얼음을 얻기 쉬워서이기도 하고, 또 얼음 녹은 물이 기울어진 바닥을 통해 빠져나가기 쉬워서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천=습지는 옛날부터 사람살이와 이래저래 깊이 연관돼 있었던 것이다.

◇신돈 때문에 망한 절터 옥천사터 = 마지막 탐방지는 창녕 옥천 골짜기에 있는 옥천사터다. 옥천사는 고려말 개혁을 하려다 실패한 스님 신돈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귀족은 양민의 논밭을 빼앗고 더 나아가 그런 양민들까지 노비로 만들어 버렸다.

권문세족의 땅(田)과 사람(民) 독차지에 맞서는 사람이 신돈이었다. 공민왕의 신임을 업고 땅과 사람을 원래대로 돌리는 기구인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설치해 권문세족의 권한과 토지와 노비를 줄이려 했으나 결국 권력은 물론 목숨까지 잃는다.

신돈을 미워한 권문세족은 신돈이 태어난 옥천사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다른 폐사지와 달리 옥천사 터에는 석탑이든 석등이든 제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징으로 내리쳤거나 쐐기를 박아넣어 쪼갠 자취가 뚜렷하다.

비슷한 보기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망한 이 옥천사 터에 들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고 상상력이 넘쳐난다. 또 신기하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수준이다. 어쨌거나 권력이나 부귀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가 무척 어려운 모양이라는 사실을 이 옥천사터에서도 헤아려볼 수 있다.

후원/경남은행 농협경남지역본부 STX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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