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삶속의 '진정한 도덕' 묻는 화두


‘반달 모양의 새까만 눈썹, 맑고 시원한 눈, 동그스름한 앳된 입모습은 아직도 나이 스물을 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의외로 젊고 아름다웠다.’
이태 동안이나 앓고 있는 남편을 위해 한 여자가 명의로 소문난 최주부를 모시러 왔다. 최주부는 가난한 이들에겐 더없이 야박하지만 그래도 길을 나선 것은 여자가 탐났기 때문이다. ‘그의 눈길은 헤어진 광당포 적삼 속으로 군데군데 드러난 흰살 위를 헤매었다.’
둘이 함께 걷는 고개에서 ‘적삼은 땀에 대한 아무런 저항력도 없이 살에 착 달라붙었다. 접시만 한 언저리가 주발만 해지고 사발만 해지고, 자꾸 번져나간다. 동그스름한 어깨에도 돈짝만 한 살구꽃이 피었다.’ 얇은 옷이 땀에 젖어 뒷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앞모습은 또 ‘땀방울이 맺힌 발그레한 얼굴, 착 달라붙은 앞섶으로 뚜렷이 드러난 가슴의 윤곽, 한 움큼에라도 쥐어질 듯한 가는 허리’다.
최주부가 넋이 나가 여자를 해치우지만, 여자는 앙탈도 흥분도 분함도 없다. 맑고 깨끗하고 명랑한 얼굴로 다시 앞장을 서는 것이다. ‘최주부가 되레 겸연쩍었다.’ 남편이 있는 오막살이에 닿았다. 여자는 남편에게 최주부와 있었던 일을 말한다. 깜짝 놀라는 최주부. 남편은 “임자가 무슨 죄요, 다 내 죄지, 잘했소” 한다.
병을 고치는 열흘 동안 ‘남편은 마치 손님에게 밥이나 권하는 듯 아내와 같이 자기를 권한다. 아내도 옷까지 훌훌 벗고 옆에 착 달라붙어 누워 부채를 찾아들더니 훨훨 부쳐준다.’
몸을 추스른 남편이 아내와 잠자리에서 얘기를 나눈다. 옆방에서 최주부가 듣고 있다.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당신 병만 낫우었으면 하고보니 맘이 가라앉았어요.” “그럼, 서로 위해서 하는 일이 뭐가 부끄러워.” “그래도 샌님(최주부)을 뫼시고 자려니 어쩐지 가슴이 뻐근하고 슬퍼요.” “고마운 생각이 지나쳐 눈물이 나려고 하더구만.”
최주부가 떠나는 날, 햇발은 나란히 선 부부의 얼굴을 잔뜩 비춘다. “저것들은 정조도 질투도 모르는 모양이지!” 최주부가 중얼거렸다. 정조를 깨뜨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뻔뻔스러운 게 틀림없고, 화는 커녕 여자를 위로하는 남편도 제 정신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정조와 약가(藥價)’는 현진건(1900~43)이 1929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소설은 치료를 빌미로 병자의 아내를 범하는 최주부가 옳은지, 아니면 병든 남편을 위해 몸을 내어주는 아내가 옳은지를 묻고 있다. 이런 아내의 심정을 이해하고 고마워하는 남편도 판단 대상이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도덕의식은, 절실한 삶의 굽이에서 하게 되는 행동과 어긋날 때가 많다. 아내, 또는 남편이 병들어 누워 있는데 가진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그것’ 말고는 없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며 이를 두고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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