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재석 186명 찬성 183표-반대 3표 '통과'
국민의힘 법안 처리 항의 퇴장, 개혁신당 반대
이재명 대통령 공약…국무회의서 공포 예상돼
손배가압류가 부른 죽음 줄고, 노사 협의 강화

2003년 창원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와 부산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 열사의 한,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은 고통, 2022년 거제 대우조선해양 김형수·유최안 등 하청노동자들 눈물을 닦아줄 법이 만들어졌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24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는 이날 오전 국민의힘의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가 끝나고 나서 노란봉투법을 표결에 부쳐 재석 의원 186명 중 찬성 183표, 반대 3표로 통과시켰다. 전날 노란봉투법이 본회의에 상정된 직후인 오전 9시 9분께부터 24시간 2분간 필리버스터가 진행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종결 직후 법안 처리에 항의해 본회의장에서 퇴장했고, 개혁신당 의원 3명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고, 사용자 범위를 ‘노동 처우’에 더해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주요 결정’으로 넓혔다. 합법적인 노조 파업에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도 담겼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은 쌍용자동차 파업 등에서 발생한 노동자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계기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이 처음 국회에 발의했으나 보수 정치권과 사용자 단체 반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를 반복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2023년 11월(21대 국회), 2024년 8월(22대 국회) 국회 본회의에서 야권 주도로 의결됐으나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올해 2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재발의가 추진됐고 3월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야 5당이 중심이 돼 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인 7월 고용노동부와 민주당 간 당정 협의 끝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대안을 만들어 전체 회의를 통과했다. 이달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23일 본회의 상정 후 24일 의결했다.

노란봉투법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공포되면 6개월 후 시행된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 노란봉투법 통과를 주도하고, 대선 후보 시절에도 공약했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유최안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오른쪽)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유최안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오른쪽)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계는 환영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하는 노동자는 누구나 단결하고 사용자와 교섭할 권리가 있다”며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진실을 20년 만에 법으로 새겨 넣었다. 오늘의 성과는 그 숭고한 희생이 만든 역사적 결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가 법의 울타리 밖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진짜 사장 교섭 쟁취 투쟁 본부’를 가동해 “2026년을 ‘비정규직·특수고용 노동자 권리 쟁취 전환의 해’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도 “강화된 단체교섭 의무로 원·하청 간 불합리한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이 일터에서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세심히 살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사용자 6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유감을 표한다”며 “국제표준에 따라 대체근로 허용 등 주요 선진국에서 보장하고 있는 사용자의 방어권도 입법해 노사관계 균형을 맞춰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공포 이후 6개월간 시행 준비 기간에 노사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기획단을 구성한다. 동시에 현장에서 제기되는 주요 쟁점과 우려 사항을 자세히 파악할 계획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각에서 우려하는 무분별한 교섭이나 무제한 파업, 불법파업에 조건 없는 면책은 아니다”라며 “정부는 노사 양측과 소통하면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1월 9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귀곡동 두산에너빌리티 정문 앞 도로에서 열린 '노동열사 배달호 21주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영정 사진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2024년 1월 9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귀곡동 두산에너빌리티 정문 앞 도로에서 열린 '노동열사 배달호 21주기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영정 사진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다. /최석환 기자

노란봉투법은 경남·부산 지역 노동계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2003년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배달호 열사는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에 참여했다 사측 손배가압류에 따른 생활고에 창원공장 노동자 광장에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그해 10월 김주익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 노조위원장은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 해고에 맞서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129일간 농성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매출액 1조 6000억 원 당기 순이익 약 240억 원을 기록하던 사측이 파업을 이유로 노동조합원 180명에게 150억 원대 손배가압류를 압박하고, 자신을 비롯한 노조 간부 7명 집을 가압류한 상태였다. 21년을 한진중에서 일한 3남매의 아버지 김 위원장의 월 기본급은 108만 원 수준, 각종 공제를 제하고 나면 80만 원을 겨우 넘겼다. 그마저도 가압류 이후 받아 든 급여는 월 12만 원이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은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노조가 반대해 일어났다. 이후 사측의 손배가압류는 봉쇄 농성이 있었던 평택공장은 물론 창원공장 노동자와 그 가족 수십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2022년 십수 년 조선소에서 일한 숙련공임에도 월 200만 원을 갓 넘긴 임금을 받는 하청노동자들이 원하청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일으킨 파업에 사측은 470억 원 손배소를 제기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화오션은 소송 철회 뜻을 밝혔지만, 실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두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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