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시대 선도, 경남과 사천] (1) 유럽 우주항공수도 프랑스 툴루즈

연재를 시작하며

우주항공청(KASA)이 경남 사천시에 문을 연 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개청 당시 정부는 한강과 반도체에 이어 우주항공에서 대한민국 제3의 기적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우주청 청사는 민간 임대 건물이다. 올해 예산은 1조 원을 넘기지 못했는데 일본은 한국 우주청보다 5배, 미국은 30배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우주탐사와 위성 개발, 발사체, 지구 보호 등 이미 많이 앞선 우주항공산업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어떤 정책과 과제에 투자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을뿐더러 여건도 녹록지 않다.

지역 간 우주항공 분야 기관 유치경쟁으로 정치권도 혼란스럽다. 그래서 우주항공청이 사천에 제대로 안착할지도 걱정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엑스(SpaceX)가 발사체 재사용에 성공하고, 스타링크(Starlink)로 거대한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시대에 '뉴스페이스' 물결이 거세지고 있다. 이제 우주패권은 단순히 우주탐사 능력을 넘어 국방과 경제를 포함한 국력의 가늠자다.

프랑스는 유럽우주국(ESA·European Space Agency) 본부(파리)가 있는 우주항공 강국이다.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우주 분야 연구·개발(R&D)과 정책, 탐사 활동에 참여해 우주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23개 회원국을 둔 유럽우주국 예산 21.3%를 분담한다.

특히, 남서부도시 툴루즈(Toulouse)에는 프랑스 국립우주청(CNES·Centre National d'Etudes Spatiales)의 가장 큰 규모 센터가 있다. 또 미국 보잉(BOEING)과 세계 민항기 시장을 양분하는 에어버스(AIRBUS) 본사와 A380 조립공장, 유럽 최대 인공위성 제작사인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Thales Alenia Space)의 거점이다.

게다가 우주항공 분야 우수 인재를 양성하는 세계 수준 대학과 연구기관, 창업 관련 시설이 집적해 있다. 툴루즈는 정부 기관을 비롯해 굴지의 우주항공 중심기업과 신생기업은 물론 연구기관과 대학, 그리고 우주 체험·전시 공간까지 어우러진 그야말로 '우주항공 복합문화도시'의 모범이다. 바로 사천시가 꿈꾸는 도시 모델이다.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는 1968년부터 툴루즈를 전략적으로 우주항공도시로 육성했다. 파리 등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을 분산하는 정책을 펼친 결과 툴루즈는 프랑스 4대 도시로 성장했다.

이에 대한민국 우주항공산업의 미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우주항공복합도시 사천 건설에 나선 경남도와 사천시의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디플로마-우주항공 과정' 교육에 참여했다. 국내 우주항공 분야 현장과 프랑스(6월 30일∼7월 8일)를 방문해 취재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항공 관련 시설 많았던 툴루즈

중앙정부, 엔지니어 이주시켜

우주산업으로 자연스럽게 확장

850여 개 기업 1만 2000명 고용

스타트업 육성.지원 거점 위치

툴루즈 우주박물관에 전시된 아리안5 실물 크기 모형. /이영호 기자
툴루즈 우주박물관에 전시된 아리안5 실물 크기 모형. /이영호 기자

프랑스 툴루즈는 세계대전 후부터 항공 관련 시설이 운영되고 있었다. 1970년대 에어버스 본사가 자리잡았고, 항공기 연구·제작·조립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곳이었다. 항공과 기술 인프라가 우주 산업으로의 확장이 자연스러웠다. 프랑스 정부는 수도 파리에 집중된 산업 구조를 분산하려는 정책을 폈고, 툴루즈는 우주항공사업의 전략적 분산 지역으로 선택됐다.

◇우주 스타트업 체계적 육성과 지원 = 'B612'는 프랑스 작가이자 비행기 조종사 생텍쥐페리가 쓴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소행성 이름이다. 툴루즈에선 건물 이름이다. 간판과 실내 곳곳에는 어린왕자 캐릭터도 새겨져 있다. 2018년 문을 연 이곳은 우주 스타트업 요람이다.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초기 자본이 없어서 시작을 못 하는 기업이 많다. B612는 이런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인큐베이팅(창업 초기 단계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B612 /이영호 기자

툴루즈 메트로폴'이 시설 운영을 담당하며 우주항공 클러스터인 에어로스페이스 밸리(Aerospace Valley)가 이곳에서 기업, 연구센터, 대학이 연결된 네트워크로 엑셀러레이팅(스타트업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고,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확장하는 데 중점을 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우주항공 기업 협의회 성격인 에어로스페이스 밸리는 세계적 테크 분야 파트너들과 협력한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성장 앞에 놓인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돕는다. 최근에는 위성과 드론, 친환경·탈탄소를 연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산업단지는 총 9개 핵심 프로젝트와 3가지 핵심목표(경제발전, 연구개발, 교육·훈련)를 수행한다.

에어로스페이스 밸리 국제업무국에서 일하는 틸로 쇤펠트 부국장은 "우주항공 분야에서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노베이션을 통해 연구개발을 하고, 산업계와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능력 있는 직원을 고용하는데 유리하고, 고객과 만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기업이 툴루즈로 몰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틸로 쇤펠트 에어로스페이스 밸리 부국장이 설명하고 있다. /이영호 기자

850여 개 기업이 1만 2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는 툴루즈는 프랑스 우주 분야 인력의 50%, 유럽의 25%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은 툴루즈 에어로스페이스 밸리를 통해 고객을 찾을 수 있고, 공급자와 파트너, 능력 있는 직원을 구할 수 있다. 긴밀하게 연결된 산학연 생태계로 연구역량도 키울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유럽사무소를 코로나19 시기 툴루즈에 설립한 이유다. 박병욱 KAI 유럽사무소장은 "당시 우리 회사는 경쟁업체보다 매출규모는 컸지만, 유럽 내 지역기반이 없어 신규 수주활동을 할 때 소통에 어려웠다"면서 "유럽 거점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서 주요 고객인 에어버스 본사가 툴루즈에 있고, 대부분 중요한 의사결정이 여기서 이뤄지는 점, 신규 고객 발굴 편의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툴루즈 우주박물관에 있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우주인 모형 /이영호 기자
툴루즈 우주박물관에 있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우주인 모형 /이영호 기자

◇우주 테마로 한 혁신적 관광명소 = 툴루즈시가 운영하는 우주박물관(Cite de l'Espace)을 방문한 지난 3일. 평일인데다 폭염에도 관람객들로 붐볐다. 박물관 중앙에는 발사체 '아리안(Ariane)5' 실제크기 모형이 위용을 뽐냈다. 우주정거장 '미르'도 인기다.   

박물관은 개관 25년 만인 2022년 연간 방문객 수 42만 3000명을 돌파했다. 현재까지 100만 명이 넘는 학생이 다녀갔다. 스페인 관광객도 즐겨 찾는다. 이제 유럽에서 우주와 천문학을 문화적 접근방식으로 대중에게 알리는데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우주비행사이자 박물관 후원자인 클로디 에그네레 씨는 "1996년 제가 미르 우주정거장에서 궤도에 머물고 있을 때 툴루즈 시장이 내년 개관할 박물관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제의해 주저 없이 수락했다"면서 "우주 분야가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갈 기회로 생각했다. 이 박물관은 프랑스와 유럽 우주 활동을 위한 훌륭한 전시장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장클로드 다르들레 툴루즈 부시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이영호 기자

이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압도적 프로그램 루네익스플로러(LuneXplorer)가 2023년 11월 탄생했다. 관람객이 달 탐사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달에 착륙하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이 프로그램 추가로 매년 4만 명 이상 방문객이 늘었다. 자칫 싫증이 날 수 있는 시설을 끊임없이 변신시키는 노력의 결과로 과감하고 혁신적인 우주 콘텐츠가 매력이다. 옥시타니(Occitanie) 지역정부와 프랑스 우주청, 유럽우주국이 재정지원과 함께 파트너로 활동한다.

박물관 최고책임자 역할은 툴루즈시 부시장이 맡고 있다. 장클로드 다르들레 부시장은 "가짜뉴스와 일부 사람의 과학 회의론이 대두되던 시기에 이곳은 유럽에서 우주와 천문학을 대중에게 올바르게 전파하는 중요한 장소였다"며 "개관 후 800만 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핑크빛 도시의 관광과 과학 분야에서 매력적인 대표상품이 됐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툴루즈 우주박물관 루네익스플로러(LuneXplorer) 프로그램 /이영호 기자
프랑스 툴루즈 우주박물관 루네익스플로러(LuneXplorer) 프로그램 /이영호 기자

◇우주항공 젊은 우수 인재, 도시 경쟁력 = 툴루즈는 대학 도시로도 불릴 만큼 학생 인구가 많다. 전체 인구의 약 25%를 차지한다. 1229년 설립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툴루즈대학이 있고, 프랑스 국립 항공대학교 에낙(ENAC)이 있다. 3000여 명의 재학생이 있는 프랑스 최고 권위 항공대학이다. 중앙정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파리에서 툴루즈로 이전했다. 항공기 운항 인재 양성 중심으로 관제 시뮬레이터, 항공기 102대 등 다양한 교육 기자재와 역량을 보유했다.  

마크 슈포 에낙 대외·국제협력 담당은 "에낙 졸업생의 95% 이상이 항공우주 분야에 취업하는데 다른 산업계보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절반 이상은 툴루즈 기업에서 일한다"며 "산업계 지원을 받아 실제 항공기업이 필요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항공 안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엠마누엘 제누 이자에 수파에로 국제관계 부장(왼쪽)과 마크 슈포 에낙 대외·국제협력 담당이 인터뷰하고 있다. /이영호 기자
엠마누엘 제누 이자에 수파에로 국제관계 부장(왼쪽)과 마크 슈포 에낙 대외·국제협력 담당이 인터뷰하고 있다. /이영호 기자

에낙 옆에는 고등항공우주대학 '그랑제꼴' 이자에 수파에로(ISAE-SUPAERO)도 있다. 교육과정은 이론과 실습을 결합해 박사학위까지 개설돼 있어 유학생에게 인기다. 1900명 재학생 중 외국 학생이 절반 이상이다. 첨단 연구시설과 혁신적 연구 프로젝트로 유명하며 연구 활동은 항공우주공학의 모든 측면을 포괄한다. 프랑스가 우주항공 강대국이 되는데 기여한 교육기관이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도 교류 중이다.

엠마누엘 제누 이자에 수파에로 국제관계 부장은 "프랑스 우주청과 공동연구를 수행해 성과를 내고, 미국 NASA를 포함해 국제 공동연구도 활발히 추진 중"이라며 "입학이 어려운데다 졸업생들은 우주항공 공학 분야 최고 엘리트로 평가돼 취업 걱정은 없다"고 했다.

지역 대학에서 배출된 우수 인재는 툴루즈의 핵심 자산이다. 장클로드 다르들레 부시장은 "우리는 전략적으로 세 개 분야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을 진행했는데 첫째는 대학 교육에서 엔지니어 양성, 둘째는 연구기관 전폭적 지원, 셋째는 산업계를 우수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이는 지식의 트라이앵글을 이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고등항공우주대학 '그랑제꼴' 이자에 수파에로 전경 /이영호 기자
고등항공우주대학 '그랑제꼴' 이자에 수파에로 전경 /이영호 기자

◇"우주항공 분야 결정권 가진 도시" = 인구 50만 명 툴루즈는 프랑스에서 파리·마르세유·리옹 다음으로 큰 도시다. 지역에서 나는 점토로 만든 붉은빛 벽돌로 건축한 건물이 많아 '장미 도시(pink city)'로도 불린다. 유럽 남부 특유의 기후와 토양이 만드는 풍요로움과 지역민의 여유로운 삶의 방식이 자리 잡았다. 가론(Garonne)강과 도시 전역에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성당과 전통유산, 풍부한 스포츠 인프라는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자원이다.    

장클로드 다르들레 부시장은 "툴루즈는 습지로 모기가 많은 지역이었다. 1968년 CNES 센터가 만들어지고 중앙정부가 1000여 명 엔지니어를 파리에서 툴루즈로 이주시킬 때 원하면 1년만 거주하다가 돌아올 수 있도록 제공했지만 단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았다"며 "새로운 곳에서 기술적 혁신을 이루겠다는 의지와 함께 파리에서 살 때보다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소개했다.

또한 "앵커기업 에어버스와 탈레스, 샤프란 등 기업 일자리와 구매력, 편리한 교통시설, 문화도시 면모는 툴루즈 도시 경쟁력을 높였다"면서 "이런 환경이 모여 툴루즈가 우주항공 분야에서 결정권을 가진 이유가 됐다"고 강조했다.

2018년 유럽과학도시로 선정된 툴루즈. 정부와 민간이 조화를 이루는 우주항공산업 육성 시스템, 국가를 초월해 대학에서 배출되는 젊은 우수 인재, 과학과 전통유산의 조화로움, 낭만과 휴식이 담보되는 여유로운 정주환경이 어우러져 유럽 최고 우주항공도시 툴루즈는 하늘을 너머 우주까지 연결돼 있다. 

 /이영호 기자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우주항공' 교육 과정의 하나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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