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36.5] 창원에서 30년간 뜨개방 운영한 김성혜 씨

입동이 지났지만, 한낮 기온이 20도 안팎을 넘나든다. 더워진 가을 날씨만큼이나 발길이 뜸해진 곳이 있다. 바로 목도리나 모자 같은 것을 직접 만드는 뜨개방이다. 김성혜(72) 씨는 창원시 의창구 서상동에서 '김성혜 손뜨개'란 뜨개방을 운영하고 있다. 창원에서 뜨개방을 한 지는 30년이 넘었다. 그는 어려운 문양, 다양한 물건 등 실과 바늘만 있다면 못 뜨는 것이 없는 실력자다.

30년 동안 창원에서 뜨개방을 운영한 김성혜 씨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백솔빈 기자
30년 동안 창원에서 뜨개방을 운영한 김성혜 씨가 뜨개질을 하고 있다. /백솔빈 기자

삶을 이끈 작은 원동력 = 김 씨는 부모님이 섬유 공장을 운영했기에 어릴 때부터 실과 바늘에 익숙했다. 집에 널린 게 원단·실·재봉틀 등이었고 자연스레 마음이 끌렸다.

결혼하고 부산에 살던 그는 아이 2명을 낳은 직후 1981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갔다. 그곳에서 부업 삼아 뜨개질로 옷을 만들어 파는 일을 했다. 그러다 멀리 경기도 과천에서 실을 떼어다가 근처 동네에 팔기 시작했다. 그땐 타래실을 손으로 직접 감아야 했는데, 섬유 공장 딸이었던 그는 물레로 실을 감아 뜨기 좋게 만들 수 있었다. 당시 뜨개 학원으로 유명했던 '양점이 손뜨개 연구실'을 다니며 계속 기술도 익혔다.

1993년 남편 직장을 창원으로 옮겼다. 한 아파트 단지 상가에 홈 패션 가게를 열고 이불·앞치마·카펫 등을 팔았다. 그에게는 뜨개 기술도 있으니 사람들에게 실도 팔면서 뜨개질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가게에는 자연스레 뜨개질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생업으로 시작했지만, 그에게 뜨개질은 일상을 이끄는 작지만 확실한 원동력이었다. 하나를 뜨면, 또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을 머금고 늘 새로운 뜨개질에 도전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인사동에 있는 '김말임 손뜨개 연구소'에 다니며 기술을 계속 배웠다. 일본편물문화협회에서 발급하는 뜨개 자격증을 지도원 과정까지 땄다. 심지어 핀란드까지 날아가 노르딕 니팅 심포지움 바사에서 뜨개질을 공부하기도 했다. 

5년 전 암이 생기면서 병마와 싸워야 했다. 항암 치료를 하러 갈 때도 뜨개질 꾸러미를 챙겼다. 주삿바늘을 손에 꽂을 때 빼곤 멈추지 않고 실과 바늘을 쥐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는 당연하다는 듯 "나는 지금도 꿈에서 뜨개질하다가 깨는데, 뭘"이라고 말했다.

김성혜 씨가 그가 운영하는 뜨개방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다. /백솔빈 기자
김성혜 씨가 그가 운영하는 뜨개방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다. /백솔빈 기자
김성혜 씨가 운영하는 뜨개방에 그가 만든 뜨개질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백솔빈 기자
김성혜 씨가 운영하는 뜨개방에 그가 만든 뜨개질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백솔빈 기자

뜨개질할 당신을 기다립니다 = 김 씨가 뜨개방을 연 지 올해로 31년이다. 뒤돌아보면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가 전성기였다. 주로 실직한 여성들이 문을 두드렸는데, 실값이 쌌기에 소일거리 삼아 하기 좋았다. 서로 둘러앉아 온갖 얘기를 다 하며, 정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구슬가방을 많이 떴어. 한 사람당 20개씩은 떴지. 우리나라 사람들 원래 정이 많잖아. 하나 뜨고 남 주고 그랬어.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그땐 신발 벗고 올라와 앉아서 뜨개질했는데 사람들이 벗어놓은 신발이 끝에서 끝으로 꽉 찼었지."

전성기 이야기가 한창 일 때 실 도매업자가 주문한 실을 건네주러 뜨개방에 들렀다. 김 씨와 도매업자는 더운 가을 날씨 이야기와 실 주문량이 적어서 걱정이란 말을 주고받았다.

"작년만 해도 쌀쌀해지는 이맘때면 사람들이 많이 왔었어. 올해는 11월이 됐는데도, 유독 사람이 없는 것 같네. 요새는 유튜브로 보면 되니까 굳이 여기 올 필요는 없잖아. 그런 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 찾아오지만."

그래도 김 씨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실과 바늘을 쥔 손을 바삐 움직이며 함께 뜨개질할 이웃을 기다린다. 그의 뜨개방이 궁금한 이들은 인스타그램(@sunghaek)을 방문하면 된다.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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