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하는 지역 의료, 소생안 어디에
(5)경남 의료 취약지가 맞이할 미래는

의정 갈등 지속, 지역 의료에도 악영향
의료진 이탈에 지역 응급실 붕괴 우려도
지역 보건의료 인력 양성 시급 목소리

"공공병원 설립해 의료 공백 메워야"
보건소와 1차 병원 간 협력도 강조
공중보건의 재교육·원격 자문도 필요

국내 보건의료 체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필수 의료 부족, 특히 지역 의료 공백 장기화 등 누적된 문제는 의정 갈등을 계기로 더 선명해졌습니다. 당연하다 여겼던 한국 의료 체계의 위태로운 민낯이 비로소 드러난 셈입니다. 전반적인 의료 체계 재설계가 절실한 지금입니다. 하지만 장기화된 의정 갈등 속에서 정작 지역 의료 문제는 논의장에서 정교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에는 18개 시군 중 14곳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만큼 세심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축소되고 생략됐던 경남지역 의료 현실을 5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일본 오키나와현 사례도 소개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 체계를 고민해 봅니다.

경남지역에서 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14개 시군은 단순히 의료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의료와 연결된 교통, 보건, 복지 체계 전반이 흔들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가 차원에서 정책을 재설계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의료·복지 기관 간 협력이 없다면 땜질식 처방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어렵고 복잡한 데다 여러 이해관계까지 얽힌 문제다.

기획 마지막 편에서는 이 같은 어려움에도 고민을 이어오는 의료 현장과 정책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이 제시한 나름의 대안도 담았다. 당장 명쾌한 해답을 낼 수는 없겠지만 다양한 고민 속에서 작은 실마리라도 건져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4일 서울 한 대형병원 모습
4일 서울 한 대형병원 모습. /연합뉴스

◇경남지역 의료 현실과 대안은 = 정부와 의사단체가 의대 정원 증원을 놓고 줄다리기하는 동안 지역 의료 공백은 깊어지고, 의료 취약지 문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대표(외과 전문의)는 의정 갈등이 장기화할수록 지역 의료는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정 대표는 “지역 응급의료체계는 오래전부터 겨우겨우 굴러가고 있는데 이번 전공의 이탈로 사실상 벼랑 끝까지 몰렸다”며 “지역 대학병원 교수 중에서도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내년에는 정말로 응급의료가 멈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의 장기적인 의료 정책이 부재하다고 짚었다.

정 대표는 “미국처럼 오로지 수익에 따라갈 것인지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부터 정해야 하는데 정부는 의대 증원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특히 현 의료 체계를 손보려면 의료계와 국민 각자가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할 텐데 이를 정부가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장들도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공공병원이나 지역 의사 양성에는 관심이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공공병원 같은 의료 기관이 생긴다 해도 제대로 된 이해를 하지 못하니 적자 폭이 크다고 (예산을) 없애자고 할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수 창원경상국립대병원 공공보건사업실장은 지역 공공의료 기관 강화부터 미래 의료 인력 양성까지 무너진 의료 체계를 체계적으로 다져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지자체는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인 지역 보건지소와 보건소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지역 책임의료기관도 이들이 더 나은 진료를 할 수 있게끔 교육과 장비 지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지역 대학병원이 지역 보건지소에서 일할 의료 인력 양성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이런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일본 지역정원제와 같은 의무 복무 계약 등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공중보건의를 선발해 군복무를 대체해주는 대신 농어촌 지역 등에 파견하고 있지만, 갈수록 그 수가 줄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역 의사를 길러낼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오키나와현 류큐대 의학부는 2009년부터 ‘지역정원제’를 도입해 의료 취약지에 근무할 학생을 미리 뽑아 지역 의사로 양성하면서 의료 공백에 대응하고 있다.

안명기 합천군보건소장도 “지금처럼 군복무를 대체하는 형태로는 공중보건의 수급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강제성을 부여하기보다는 애초에 지역 출신 의대생을 지역 의사로 키워서 보건지소에 투입하는 방향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3일 오후 119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창원시 의창구 파티마병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김구연 기자
지난 9월 3일 오후 119대원들이 응급환자를 창원시 의창구 파티마병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공공의료 강화, 지역 의료 공백 메울 대안 될까 = 보건소와 보건지소, 의료원 등 지역 공공의료는 지자체 중심으로 돌아간다. 특히 수익성에 구애받지 않는 까닭에 민간 병원이 꺼리는 진료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공공의료 대다수를 공중보건의에게 의존하고 있고 민간 병원과의 연계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백주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이 같은 문제 대안으로 ‘공공병원’ 설립을 꼽았다. 그는 지역에 들어서는 공공병원이라면 단순히 병원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을 넘어 지역 의료 체계 핵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의료 취약지에 있는 분들 모두가 아픈 것은 아니고 대부분 건강하거나 질병 초기 단계인 분들”이라며 “이분들이 큰 병으로 악화하지 않게끔 잘 관리해 주는 것도 중요한데 이러한 역할은 공공의료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건소나 보건지소, 1차 병원에서 주민 건강 관리를 책임져야 한다. 공공병원이 이를 관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공공병원에 필수 의료과를 두고 웬만한 치료는 지역 내에서 가능하게끔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 교수는 공공병원 설립부터 유지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의지에 달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는 지역 의료 취약지 문제를 입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며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앞으로 인구가 줄게 되면 지역 의료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부는 의료 취약지일수록 예산을 대폭 늘리고 지자체에서는 공공병원·1차 병원과 협력할 수 있는 종합 행정을 펼쳐야 한다”며 “공공병원은 공중보건의 훈련이나 원격 자문 체계를 갖춰 의료 문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아베 요시히로(65) 일본 오키나와현 이에촌립진료소장은 지역 공공의료 강화 방안으로 의사 개개인 교육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자체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진료소장은 “현실적으로 모든 섬에 의사를 둘 수는 없다. 지금은 환자가 올 때까지 의사가 기다리는 의료 체계인데 앞으로는 의사가 직접 출동해서 현장에서부터 처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현장출동이 가능한 의사를 키우려면 교육이 필요한데, 섬이나 시골지역에서도 실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자체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지역에 머물 수 있게 거주 비용이나 장비 등 지원을 아끼면 안 된다”며 “그러려면 예산은 물론이고 지역 의료 체계에 대한 이해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 취약지 문제에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논의 토대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운용 대표는 “정부나 정치인이 사회적 문제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뜻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설 수밖에 없다”며 “비록 지금은 소수지만 꾸준히 목소리를 모아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끝>

/박신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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