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하는 지역의료, 소생안 어디에]
(2)통영 섬마을 유일한 병원

공보의에만 의존...전문 인력 부재
기본적인 약 처방·응급처치만 가능
주민들 "조금만 아파도 육지 가야돼"

당장 전문 의료 인력 투입 불가능
"의료 전달 체계부터 다시 세워야"

국내 보건의료 체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필수 의료 부족, 특히 지역 의료 공백 장기화 등 누적된 문제는 의정 갈등을 계기로 더 선명해졌습니다. 당연하다 여겼던 한국 의료 체계의 위태로운 민낯이 비로소 드러난 셈입니다. 전반적인 의료 체계 재설계가 절실한 지금입니다. 하지만 장기화된 의정 갈등 속에서 정작 지역 의료 문제는 논의장에서 정교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에는 18개 시군 중 14곳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만큼 세심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축소되고 생략됐던 경남지역 의료 현실을 5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일본 오키나와현 사례도 소개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 체계를 고민해 봅니다.

통영 앞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 568개(유인도 41개·무인도 527개)가 떠 있다. 남해안을 끼고 있는 경남 안에서도 최다다. 그중에서 욕지면은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섬이다. 중심 섬 욕지를 비롯해 10개 유인도에는 주민 1924명(이달 29일 기준)이 삶을 일구고 있다.

섬 인구가 적지 않은 만큼 최소한의 편의시설은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의료 기관은 욕지면보건지소가 유일하다. 육지 의료 기관에 가려면 한 시간가량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욕지면에서는 보건지소가 종합병원이고 대학병원인 셈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인구가 고령(65세 인구 비율 39.5%)인 만큼 보건지소 홀로 모든 의료 수요를 감당하기는 벅차다.

통영 욕지면 욕지도 전경. /박신 기자
통영 욕지면 욕지도 전경. /박신 기자

◇24시간 문 여는 보건지소 = 욕지면보건지소는 육지 보건지소와 달리 24시간 운영된다. 밤낮 없이 응급상황에는 욕지면보건지소 공중보건의가 환자를 챙긴다. 위급 상황에는 육지 의료 기관까지 나서기도 한다.

문제는 육지까지 이동하는 수단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육지로 가는 배편이 끊겼을 때는 119 소방정을 섬으로 부르는데, 오는 데만 50여 분이 소요된다. 1분 1초를 다투는 초응급 상황에는 어쩔 수 없이 욕지도 항구에 정박 중인 해경정을 이용한다. 해경정 마저 자리를 비웠을 때는 민간 선박을 급하게 수소문해야 한다. 통영시도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관련 조례를 통해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민간 선박에 운항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어렵사리 응급환자를 의료 기관에 이송한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공중보건의 한 명이 육지로 나갔을 때 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해 도서지역 보건지소에는 의과 소속 공중보건의를 2명씩 두고 있는데, 나머지 한 명이 휴가·대체 휴무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도 적지 않아 공백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달 25일도 그랬다. 이날 오전 8시께 응급상황이 발생해 의과 공중보건의가 환자 이송에 동원되면서 보건지소 진료가 잠시 중단됐다. 공중보건의는 오전 10시 30분께 복귀했지만, 그사이 보건지소를 찾은 환자들은 진료받을 수 없었다.

한종희 욕지면보건지소 공중보건의는 “한 달에 많으면 10명 정도 배를 태워 육지로 이송한다”며 “날씨 등 여건이 맞아서 배로 이송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정말 최악의 경우 배가 안 뜨기도 하는데 그러면 섬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섬 보건지소는 육지와 달리 일반 진료와 함께 응급까지 담당하다 보니 중환자도 자주 맡게 된다”며 “다만 보건지소 여건상 이곳에서 실질적인 조치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영시 욕지면보건지소.  /박신 기자
통영시 욕지면보건지소. /박신 기자

◇주민 의료 수요 못 따라가는 보건지소 = 욕지도에서 홀로 사는 정정이(73) 씨는 7년 전 왼손가락 엄지가 절단됐다. 정 씨는 상처를 보여주며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밭일을 마치고 왔는데 이상하게 왼쪽 팔이 저리고 아팠다”며 “괜찮겠지하고 자고 일어났는데, 손이 퉁퉁 부어 있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정 씨는 곧바로 통영 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곳에서는 수술이 불가하다는 답을 받았다. 이후 도착한 부산 한 대학병원에서는 그사이 균이 팔 전체로 퍼져 팔을 절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최악은 면했다.

정 씨는 “균이 팔을 타고 올라오면서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며 “섬이 좋기는 하지만 몸이 급할 때는 병원이 너무 멀리 있으니까 늘 걱정되는 거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욕지도 주민 김남곤(77) 씨도 비슷한 걱정을 털어놨다.

김 씨는 “육지 같으면 선택할 수 있는 의료 기관이 많은데, 욕지도는 배편이 끊기면 오로지 보건지소에만 의존해야 한다”며 “간단한 약 처방이나 진료는 봐 주지만 조금만 전문성이 요구되거나 위험이 따르는 조치는 모두 육지로 나가야 하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욕지도에서 육지로 나가면 그날 하루는 밭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한다고 봐야 한다”며 “정말 난도가 높은 수술이나 검사가 아니라면 간단한 조치는 욕지도 안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무엇보다 경력 있는 의료인이 욕지도에 상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은 군복무를 대체하러 온 공보의가 진료를 보는데 아무래도 혼자 책임지고 진료를 보기는 한계가 많다”며 “다양한 진료를 볼 수 있는 전문 의료인이 섬을 책임지고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욕지도에 밭일하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지금은 엑스레이 하나 찍을 수 없다”며 “전문 의료 인력도 필요하겠지만, 그에 맞는 장비도 들여다 놓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통영시 욕지면보건지소와 건강증진형보건지소. /박신 기자
통영시 욕지면보건지소와 건강증진형보건지소. /박신 기자

◇섬지역 의료 체계 지속 가능하나 = 주민들이 털어놓은 것처럼 현재 욕지면보건지소에 배치된 의과 공중보건의 2명은 모두 인턴 과정을 갓 마친 일반의다. 기본적인 응급처치 등은 가능하지만,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료 행위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주민들에게는 섬지역 유일한 의료 기관인 만큼 전문 의료인 상주와 의료 장비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일선 의료인들은 현 의료 체계 아래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한종희 욕지면보건지소 공중보건의는 “의사가 조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겠지만, 조금이라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무엇보다 현재 보건지소 여건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무작정 전문 인력만 데려오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중보건의 대신 전문 의료 인력을 데려오려면 예산도 더 들어갈 텐데 지자체 입장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임금을 맞춰 준다고 해도 의사 한 명이 섬 전체 의료를 책임진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 전반적인 의료 체계를 손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당장은 공중보건의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마저도 전망이 밝지 않다. 통영 관내 공중보건의 수는 2021년 대비 현재 2명이 감소했다. 도서지역 공중보건의는 2명을 유지해야 하는 까닭에 건드리지 못한 채 보건소와 통영적십자병원에 배치되는 공중보건의가 한 명씩 줄었다.

한종희 공중보건의는 “공중보건의 제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위태로웠는데 의정 갈등을 계기로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후배 중에는 현역 복무 기간이 짧아지면서 의대 입학과 동시에 현역 입대를 택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 의료 공백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1차 의료 기관부터 상급 의료 기관으로 이어지는 의료 전달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야 하는데 곧바로 대학병원부터 찾는 한국에서는 이 체계가 무너져 있다”며 “지역에 흩어진 1차 의료 기관이 제 역할을 하려면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 인력, 의료 장비 등 전반적인 기반도 함께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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