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하는 지역 의료, 소생안 어디에>
(3)일본 섬마을에 뿌리내린 의료 체계
섬 주민 의료 책임지는 이에촌립진료소
전문 의료 인력·다양한 검사 장비 갖춰
지속 가능한 의료 위한 정책도 뒷받침
오키나와현 2009년 '지역정원제' 도입
젊은 의사 양성·의료 취약지 파견 효과
국내 보건의료 체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필수 의료 부족, 특히 지역 의료 공백 장기화 등 누적된 문제는 의정 갈등을 계기로 더 선명해졌습니다. 당연하다 여겼던 한국 의료 체계의 위태로운 민낯이 비로소 드러난 셈입니다. 전반적인 의료 체계 재설계가 절실한 지금입니다. 하지만 장기화된 의정 갈등 속에서 정작 지역 의료 문제는 논의장에서 정교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에는 18개 시군 중 14곳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만큼 세심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축소되고 생략됐던 경남지역 의료 현실을 5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일본 오키나와현 사례도 소개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 체계를 고민해 봅니다.
일본 오키나와현은 본토에서 1500㎞ 이상 떨어진 최남단 현이다. 또 160개 섬(유인도 48개·무인도 112개)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건의료 체계가 작은 마을까지 뿌리 내리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의사 쏠림·인력 확보 문제와 필수 의료과 부족 등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키나와현은 작은 섬마을까지 의료 인력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 나아가 젊은 의사들이 의료 취약지역에 정착할 수 있게끔 다양한 제도와 정책도 펼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는 오키나와현 안에서도 의료 취약지역으로 꼽히는 북부 지역 이에촌립진료소에 다녀왔다. 한국과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이 시행착오 끝에 내놓은 결과물은 무엇일까?
◇섬 주민 건강 책임지는 이에촌립진료소 = 이에촌립진료소는 공항·관공서 등 주요 시설이 밀집한 오키나와현 나하시로부터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섬이다. 오키나와현 북부 모토부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들어가면 나온다.
이곳 인구는 4200여 명으로 통영 욕지도와 마찬가지로 대다수가 고령(65세 이상 인구 비율 37%)이다. 욕지면보건지소와 다른 점이라면 전문 의료 인력과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촌립진료소는 요통과 무릎 통증 등 정형외과 진료를 비롯해 고혈압·당뇨·심장질환·뇌졸중 후유증 등 내과 질환도 다룬다. 하루 평균 약 100명이 진료소를 다녀간다.
진단 장비로는 △엑스레이 검사기 △CT(컴퓨터단층 촬영) 검사기 △혈액 검사기 △동맥혈액가스검사기(의식 저하나 호흡 곤란 등 증상이 있을 때 폐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원활히 이뤄지는지 확인하는 검사) △초음파 검사기 △위내시경 검사기 등이 갖추어져 있다. 또 응급환자 후송선도 보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14년 4월에는 투석센터를 개소해 20여 명의 투석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보건의료 인력 구성은 상근 의사가 3명(외과 2명·내과 1명), 간호사 6명, 방사선 기사 1명, 물리 치료사 2명이 진료소를 지키고 있다.
◇섬 보건의료 체계 직접 설계한 의사 = 이에촌립진료소도 원래부터 전문 의료 인력과 다양한 의료 장비가 갖추어져 있었던 곳은 아니었다. 아베 요시히로(65) 진료소장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 역시 의료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섬 주민들은 진료소 대신 육지 의료 기관을 찾았고 진료소를 방문하는 주민은 하루 20여 명에 그쳤다. 그마저도 2차 의료 기관 진료를 보기 위한 진단서 의뢰가 대다수였다.
아베 소장은 2008년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오키나와현 북부 의사회 병원에서 일하던 무렵 이에섬을 처음 알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3개월 동안 이에섬으로 파견 진료를 오면서 섬이 처한 현실도 피부로 느꼈다. 파견 진료 기간이 끝난 뒤에도 섬이 뇌리에 깊숙이 남았다.
그는 “이에섬 주민들을 두고 가려니 마음에 계속 불편했다”며 “그때 마침 진료소에 자리가 난다는 소식을 들었고 조건 같은 거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예상하고 진료소로 들어왔지만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제대로 된 구급차도 없었고 응급환자를 이송할 배도 어선이 전부였다. 제대로 된 장비 역시 있을 리 만무했다. 주민들 역시 진료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아베 소장은 “처음에는 내가 여기서 근무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실망감이 컸다”며 “우선 대다수가 노인인 환자들에게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이에 대해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환자와의 관계부터 차근차근 쌓은 아베 소장은 이후 부족한 의료 장비와 인력 보강에 나섰다. 응급 후송선은 설계 단계부터 직접 참여해 도입을 끌어냈다. 섬 주민 염원이었던 투석센터 역시 직접 관계 당국 설득에 나서 뜻을 관철했다.
이와 함께 의료 인력 양성에도 앞장섰다. 의대생 실습과 연수의 교육도 직접 했다. 섬에서 잠깐이라도 진료를 본 의사라면 본인처럼 관심을 둘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아베 소장은 “섬과의 접점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섬 지역 진료를 어렵고 꺼리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선의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제도를 갖추어 놓고 그에 맞는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섬으로 들어오는 젊은 의사들 = 오키나와현은 섬을 비롯한 의료 취약지에 보낼 의사 수를 확보하고자 2009년부터 ‘지역정원제’를 도입했다. 지역정원제는 의대생 선발 과정부터 의료 취약지에 근무할 의사를 고려해 뽑는 제도다.
지역정원제로 입학한 학생들은 의대 6년 과정 내내 수업료와 생활비를 지급받는다. 그 대신 졸업 후 오키나와현이 지정하는 임상 연수병원에서 임상 연수(2년 과정)와 전문 연수(3~5년 과정)를 수료해야 한다. 이 과정을 마친 뒤에는 최대 4년간 의료 취약지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이에촌립진료소 상근 의사 중 한 명인 구다카 쇼타(33·내과) 씨도 지역정원제 출신이다. 그는 류큐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초기 연수 2년(인턴) 과정과 후기 연수(내과 전공의) 3년 과정까지 마쳤다. 이후 의료 취약지 의무 복무 규정에 따라 지난해 3월부터 이에촌립진료소에서 일하고 있다.
구다카 씨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껴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며 “하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지역정원제로 혜택을 받아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지역정원제 출신과 달리 섬지역 근무를 자원했다.
구다카 씨는 “육지 의료 기관도 갈 수 있었지만 진짜 의료 취약지는 섬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에섬은 인구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을 수도 있어 괜찮은 선택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젊은 의사들을 섬에 오랫동안 묶어 두는 것은 그들 경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지금처럼 혜택을 주고 일정 기간 의사들을 취약지에 보내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덧붙였다.
도쿄가 고향인 그는 의무 복무 기간이 끝난 뒤에도 오키나와에 남을 예정이다.
그는 “치료 분야는 아니지만 대학원에 진학해 예방의학을 연구하려고 한다”며 “오키나와는 중년층의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이 문제인데 이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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