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하는 지역 의료, 소생안 어디에>
(4)의정 갈등이 놓친 것들

의정 갈등 장기화에 의료 붕괴 임박
일본 '지역정원제'로 의료 문제 대응
학생 때부터 취약지 보낼 의사 양성
종합진료 볼 수 있는 의사도 늘려야

국내 보건의료 체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경고는 이미 오래됐습니다. 필수 의료 부족, 특히 지역 의료 공백 장기화 등 누적된 문제는 의정 갈등을 계기로 더 선명해졌습니다. 당연하다 여겼던 한국 의료 체계의 위태로운 민낯이 비로소 드러난 셈입니다. 전반적인 의료 체계 재설계가 절실한 지금입니다. 하지만 장기화된 의정 갈등 속에서 정작 지역 의료 문제는 논의장에서 정교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경남에는 18개 시군 중 14곳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만큼 세심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축소되고 생략됐던 경남지역 의료 현실을 5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일본 오키나와현 사례도 소개하고 지속 가능한 지역 의료 체계를 고민해 봅니다.

의정 갈등이 9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내년에는 공백이 아닌 붕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경남도민일보>는 의료 불균형 문제를 앞서 겪은 일본 사례에서 한국 사회가 의정 갈등 국면으로 놓친 것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의료 공백 너머 붕괴 수순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6일 의과대학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가량 늘린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의대 정원 증원에 앞서 필수 의료 인력 화보와 지역 의료 공백 등 논의돼야 할 것들이 생략됐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은 2월 19일 집단 사직했다. 의대생들 역시 대다수가 휴학을 신청했다. 의사 단체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소모적인 공방을 벌이는 사이 의료 체계는 빠르게 무너졌다.

삼성창원병원 경남권역응급의료센터 앞에 응급실 진료 지연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남석형 기자
삼성창원병원 경남권역응급의료센터 앞에 응급실 진료 지연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현재로서는 당장 내년 의료 현장이 버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출근 중인 전공의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3월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 임용된 전공의 1만 463명 중 사직하지 않고 계약을 유지하는 이들은 1327명(지난 9월 30일 기준)에 불과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내년 전문의 시험 응시 가능 인원도 대폭 줄었다. 올해가 수련의 마지막 해여서 내년 전문의 시험 응시가 가능한 전공의는 576명인데 이는 지난해 응시자(2782명)의 5분의 1 수준이다.

그마저도 전공의 수련 기간이 3년으로 짧은 가정의학과가 96(16.7%)명으로 가장 많았다. 필수 진료과인 내과(91명), 소아청소년학과(26명), 외과(19명), 산부인과(12명)는 대상자를 모두 합쳐도 148명에 그쳤다.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자 수가 줄면서 내년도 전임의 채용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전임의는 전문의 자격증을 딴 뒤 세부 전공을 더 배우고자 대학병원에 남는 의사들이다. 이들은 입원 환자 관리뿐만 아니라 수술, 외래 진료 등 업무 범위가 넓어 핵심 인력으로 꼽힌다.

류큐대병원 오키나와현 지역의료지원센터 건물에 있는 실습 공간. 류큐대 의학부 학생들이 심폐소생술 실습을 하고 있다. /박신 기자
류큐대병원 오키나와현 지역의료지원센터 건물에 있는 실습 공간. 류큐대 의학부 학생들이 심폐소생술 실습을 하고 있다. /박신 기자

◇일본, 의료 인력 확보 어떻게 = 일본도 오래전부터 의료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일본 안에서도 섬이 많은 오키나와현은 의료 취약지 인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카와즈마 요시카즈(61) 류큐대병원 오키나와현 지역의료지원센터 부센터장은 “오키나와현 의사들도 지역에 있는 작은 섬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며 “의사 수는 꾸준히 늘어갔지만 의사가 특정 과나 지역에만 몰려 있어 정작 필요한 곳은 늘 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여러 제도 가운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게 ‘지역정원제’다. 지역정원제는 2009년 류큐대학 의학부에 도입됐다. 의료 취약지에 근무하겠다는 의사를 뽑아 양성하는 제도다. 지역정원제로 입학한 학생들은 장학금 등 여러 혜택을 받는 대신 임상 연수(2년)와 전문 연수(3~5년)를 마친 뒤 의료 취약지에서 최대 4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한다.

'올해까지 지역정원제로 류큐대 의학부에 입학한 이들은 모두 237명이다. 이 가운데 118명이 졸업했고, 현재 오키나와현 의료 취약지에서 의무 복무를 하는 이들은 28명이다. 입학생 가운데 자퇴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탈한 이들은 2명뿐이다. 지역정원제 입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료과도 제한돼 있다. 이들은 주로 오키나와현에서도 의료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필수 의료과에 투입된다.

지역정원제 학생 선발 정원에 반드시 작은 섬 지역 출신 학생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은 학업을 마치고 나서 고향 섬으로 돌아가 의료 활동을 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를 염두에 두고 입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카와즈마 요시카즈 부센터장은 “작은 섬지역 출신 학생들은 입학 성적은 다소 떨어질 수 있으나 졸업 때는 대부분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며 “지역에 대한 애착심도 강해서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 의사로 일할 수 있게 교육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카와즈마 요시카즈 류큐대병원 오키나와현 지역의료지원센터 부센터장이 지난달 1일 오키나와현 지역의료지원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박신 기자
카와즈마 요시카즈 류큐대병원 오키나와현 지역의료지원센터 부센터장이 지난달 1일 오키나와현 지역의료지원센터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박신 기자

◇지역 의사 키우는 지역 대학병원 = 지역정원제로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사명감과 책임감도 필요한 덕목이다. 기존 의과대학 교육 과정 안에서는 이러한 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오키나와현은 지역의료지원센터에서 학생들이 ‘지역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류큐대병원은 오키나와현으로부터 관련 사업을 수탁해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지역의료지원센터는 학생 교육과 경력 형성과 함께 지역 내 의사 부족 현황을 분석해 의료 기관을 지원하고 있다.

카와즈마 요시카즈 부센터장은 “지역에서 환자를 볼 때는 말투나 태도가 중요한데, 교만하지 않게 지역민에게 다가가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면서 “지역의료지원센터는 환자와 그 가족 나아가서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서 환자 한 명당 앓고 있는 질환이 다양한 만큼 ‘종합 진료’를 볼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데도 힘 쓴다고 설명했다. 카와즈마 요시카즈 부센터장은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분야 별로 몇 명의 의사가 필요한지 파악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환자가 전문적인 수술이 필요한 상태가 되기 전에 이를 관리하고 지도할 가정의학과나 예방의학과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최종적으로 환자가 마지막까지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환자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생명만 연장하는 것은 의료비 지출만 늘릴 뿐이지 고령화 사회에 알맞지 않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박신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