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공원 주제로 논문 3편 낸 이동진 교수 인터뷰
합천군민이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광주를 찾은 이들은 전두환 호를 따서 만든 '일해(日海)공원'에 국민이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는 펼침막을 들었습니다. 매듭짓지 못한 일해공원 논란이 경남을 넘어 광주까지 가게 된 겁니다. 이동진(62)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해공원을 주제로 논문 3편을 냈습니다. 이 교수는 일해공원을 주제로 지방 정치와 자치, 사회운동 등 합천지역 사회를 바라봤습니다. 우리는 전두환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답을 구하고자 지난 17일 이 교수를 경북대에서 만났습니다.
이 교수는 1961년 합천군에서 태어났다. 합천중학교까지 다니다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경남 출향인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고도 합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전국 각지에서 촛불이 일렁였다. 그때 합천에서도 소규모지만, 촛불집회가 열렸다.
“합천에도 사회운동이 있구나 싶었죠. 보수적인 농촌 지역이라 시민사회가 별로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사회운동이 어떻게 발생하게 됐는지 궁금했습니다. 일해공원 반대운동이 고조됐다가, 침체했다가, 다시 고조되는 흐름을 보이는데 그 원인을 내외부적인 요인에서 찾아보니까 설명이 되더라고요.”
그는 2022년 2월과 2023년 4월 <외부 정치와 내부 정치 사이의 풀뿌리 자치>를 주제로 논문 2편을 펴냈다. 모두 합천군 일해공원 명칭 선정 과정의 갈등을 사례로 다뤘다. 지난달에는 <군 단위 사회운동의 내부 동학: 지방자치 초기 경상남도 합천군의 세 사례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일해공원이 가능했던 배경 = 일해공원의 원래 이름은 ‘새천년생명의숲’ 공원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새천년 프로젝트 예산을 받아서 만든 공원이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일해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심의조 당시 합천군수가 일해공원으로 명칭 변경을 시도했다. 결국, 2007년 1월 29일 군정조정위원회는 공원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선정했다.
“2004년 노무현 탄핵 소추 이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보수 정당이 불리해지면서 일해공원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인기가 떨어지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심 군수가 재선하면서 일해공원 명칭이 선정됐죠.”
이 교수는 동창회와 종친회, 친목단체, 봉사단체 등으로 사회적 자본을 공유한 이들을 ‘토착인’이라 불렀다. 연고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 토착인들이 주로 일해공원 명칭에 찬성했다.
당시 일해공원 명칭에 찬성하는 사회단체가 군민한마음대회를 열었다. 대부분 노인이었고, 합천군에서 사회보조금을 받는 관변단체가 절반 가까이였다. 군수의 권력 자원에 의존하는 인적관계였고, 대부분 보수 성향 단체였다.
일해공원 명칭 추진에 새마을운동 합천군지회가 앞줄에 서 있었다. 심 군수는 오랫동안 새마을운동 합천군지회에 몸담았고, 1988년 지회장까지 지냈다. 당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새마을운동중앙본부장을 하고 있었다. 심 군수는 전두환 기념사업을 하겠다는 공약도 낸 적이 있다.
◇전두환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 일해공원 명칭에 찬성하는 이들은 반대 의견을 낸 사람들을 ‘외부 세력’으로 몰아갔다. 일해공원 명칭에 반대하면 합천군에 주소를 둔 합천군민이지만, 지역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단체 소속이거나, 외지에 살다가 이주한 사람도 있었다. 합천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돌아온 사람까지도 외지인 취급을 받았다.
이 교수는 “(일해공원 명칭 논란은) 군수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토착 권력 세력과 그들 바깥에서 새로운 공공 의제를 제시하는 도전 세력 간의 갈등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방식으로 도시에서의 사회운동이 농촌에 들어온 거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남 전체에서도 전두환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들이 외부와 연대하려고 하면서 지방 정치의 공간을 넓혔다”며 “토착 엘리트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게 된 점을 볼 때 합천군의 사례는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일해공원 명칭은 바꿔야 할까, 말아야 할까. 2021년 6개 지역 언론사가 군민 여론조사를 했다. 일해공원 명칭 존치 49.6%, 명칭 변경 40.1%, 잘 모르겠다·기타 의견 10.3%였다. 여론조사를 하기 전에 공청회를 열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일해공원 명칭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반대했다.
이 교수는 “어떤 방식이든 서로 토론을 거쳐서 입장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과정이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다만 일해공원 명칭을 존치하려면 적어도 70% 이상의 의견을 받아야 한다.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갈등은 계속된다”고 답했다.
◇경남에서 가장 보수적인 합천, 왜? = 전두환의 고향, 합천군은 보수적인 정치 성향이 세다. 국회의원 선거만 보더라도 1978년 이후 2004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수 정당 후보를 택했다. 2022년 대선에서도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73.8%가 표를 몰아준 지역이다. 어쩌다 합천군은 경남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 됐을까.
이 교수는 지난달에 펴낸 논문에서 1996년 황강취수장 설치반대 투쟁, 2005년 군수 비리에 대한 수사 촉구를 둘러싼 갈등에 주목했다. 근대 사회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갈 계획이다. 3.1운동 당시 합천군에서 사망자와 체포자가 많은 점도 언급했다. 추가로 새로운 사실은 없을지 살피고 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에 거주하다 돌아온 원자폭탄 피해자,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 문제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지역사회가 기억하는, 기념하는 인물이 누구냐에 따라 정체성이 달라집니다. 대구는 지금도 박정희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그 반대편에는 인민혁명당 사건이 있어요. 박정희를 찬양하면 인혁당 사건은 망각하게 되고, 인혁당 사건을 기억하면 박정희를 비판하게 되는 거죠. 지역사회의 정치적 태도를 바꾸려면 어떤 역사를 발굴하고,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인민혁명당 사건이란?
박정희 정권 당시 대구와 경북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던 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1975년 4월 8일 사형을 선고받고 다음 날 바로 형이 집행된 사건. 훗날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에서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박정희 정권에서 저지른 대표적인 ‘사법 살인’이라 불린다.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대구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지면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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