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없는 변명, 늦은 비공개 사과
윤석열, 국정운영 변화 의지 없어
국정 주도권 쥔 국회 변화 추동을
채 상병 특검, 이태원법 재의결 등
변화 이끌 여야 정치적 선택 중요
역대급 세수 결손, 허황된 약속들
민생 외면 경제 정책 전환도 필요

“아들은 잘못한 일이 없으면 종아리를 맞아도 비는 법이 없었다.”

지난해 고인이 된 윤석열 대통령 부친 윤기중 전 연세대 명예교수가 아들을 회고하면서 책에 쓴 내용이다. 22대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 반응은 딱 이와 같다.

◇국정 쇄신·변화 기대감 ‘0’ =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192석, 여당인 국민의힘이 108석에 그친 참담한 성적표에도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오전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국정 방향은 옳았고 좋은 정책을 추진했으나 국민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거 같다’는 투로 총선 패배 원인을 진단했다.

총선 참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자신과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 관련 학력 위조·주가 조작·국외 유명 상표 명품 가방 수수·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퇴장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퇴장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연합뉴스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외압 의혹, 이와 관련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주호주대사 임명과 ‘도피 출국’ 논란, 실질 물가에 무지를 드러낸 “대파 가격 합리적” 같은 ‘대통령발 실책’은 언급조차 없었다. 되레 국민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설익은 시행으로 국민에게 고통만 주는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성보다 변명에 가까운 국무회의 발언에 비판 여론이 일자 오후 들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입을 빌려 “대통령부터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는 실제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를 사과를 전했다. 집권 여당 총선 참패에도 국정 운영에 별다른 변화가 없으리라 예상되는 대목이다.

◇주도권 야권에…여당 협조도 필요 = 주도권은 야권이 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 변화를 가늠할 척도는 앞으로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처리가 예상되는 각종 법안 관련 윤 대통령 태도에 있다.

민주당은 당장 내달 임시국회에서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지난 3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안’(특검법) 처리를 예고했다. 임시국회 후반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전세사기 특별법안’ 처리도 예고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결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총 9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이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다. 임기가 채 만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다. 전임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한두 건 할까 말까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박찬대 공동위원장이 17일 검찰특활비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박찬대 공동위원장이 17일 검찰특활비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참패로 국민의힘도 이들 법안 처리를 마냥 반대하기 어렵다. 당내에 참패 주요 원인이 ‘대통령실 실정’에 있다는 여론이 높고, 선거 이후 대통령 지지율도 급락해 정부 편 들기도 쉽지 않다.

대통령실이 주요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채 상병 특검법’, 정부·여당 측 반대 조항이 많은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는데 윤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하느냐에 국정 운영 변화 신호를 읽을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총선 패배 이후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들겠다’고 한 국민의힘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결에 손을 들어줄지도 국정 변화에 전기가 될 전망이다.

야권은 물론 여당 지원마저 받지 못하면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을 넘어 ‘데드덕’(레임덕보다 심각한 권력 누수 현상) 상황에 놓여 국정에 대대적인 변화·쇄신 없이는 남은 3년 임기를 오롯이 채우지 못할 위기에 놓이기 때문이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서 국민이 표출한 민의를 잘 살펴야 한다”며 “검찰 권력을 활용한 정치 부재, 거부권 행사로 여야 간 대화 부재를 일으킨 데 심판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각한 문제를 풀려면 민의를 우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이 기피 또는 회피 대상이 되는 법안에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족집게 개헌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뿐만 아니라 민생·경제 정책 변화해야 =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을 더 속도감 있게 펼치고 ‘민생토론회’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겠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신년업무보고를 대체해 총선 전까지 24차례 이어진 ‘민생토론회’는 당장 실현 가능성이 부족하고 허황된 약속, 과도한 규제 완화 발표 등으로 여론 뭇매를 맞았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할 목적이 다분했다며 사법 당국에 고발장도 접수됐다.

윤 대통령이 240여 개 정책을 쏟아내며 입으로 뿌린 돈만 1000조 원이 넘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민간 투자’ 영역이 포함된 것이라지만 걸핏하면 ‘건전 재정’을 부르짖는 정부가 내놓은 변명으로는 궁색하다. 더구나 지난해 56조 4000원 규모 역대급 세수 결손까지 발생했다. 수많은 정책 과제를 ‘원점 재검토’ 해야 할 판이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875원짜리 대파 한 단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875원짜리 대파 한 단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이어 이란-이스라엘 분쟁으로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현상이 더욱 심화할 태세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억제해 온 식료품 등 공산품 가격, 시내버스·도시철도·전기·도시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도 대기하고 있다. 정책 변화 초점이 민생·경제에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총선 이후) 바닥경기를 살리고 고물가로 고통받는 서민경제를 안정화해야 한다”며 “지난해와 같이 정부부문이 민간부문보다 성장기여도가 낮아 성장 발목을 잡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되기에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써 경제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총선 정국에서 발표한 각종 감세 관련 정책과 법안은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세입기반을 강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총선 정국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등 지역별 현안 사업이 공약이라는 형태로 우후죽순 발표됐는데, 이는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닌 데다 재정건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 정부 기조로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며 “재정정책 운용 기조도 재정비해 지난해 확정한 올해 예산을 충실히 집행하고 부족한 부분은 추경으로 필요한 지출 요소를 적극적으로 채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83차 촛불 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파를 들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83차 촛불 대행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파를 들고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경제·민생이 총체적 위기인데 정부는 민생을 살리라는 국민의 절박한 외침에 말로만 ‘민생’을 입에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여당을 향해 “민생 회복 긴급 조치 시행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긴급 조치 내용은 △민생 회복 지원금 약 13조 원 △소상공인 대출과 이자 부담 완화 1조 원 △저금리 대환대출 2배 확대 △소상공인 전통시장 자금 약 4000억 원 증액 △소상공인 에너지 비용 지원금 약 3000억 원 등이다.

이 대표는 “말로만 ‘민생’ 말고 현장에서 고통받는 국민 삶에 진심으로 반응하고 대책을 세우길 바란다”며 “이런 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 아니다. 국민 다수에 필요한 정책을 하는 것을 누가 포퓰리즘이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 미래를 망치는 것”이라고 한 데 반박한 것이다. <끝>

/김두천 기자

#총선 #경남

관련기사

관련기사

잠깐! 7초만 투자해주세요.

경남도민일보가 뉴스레터 '보이소'를 발행합니다. 매일 아침 7시 30분 찾아뵙습니다.
이름과 이메일만 입력해주세요. 중요한 뉴스를 엄선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