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수용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
깨어서 지켜볼 수 있어야 삶 재창조

내 감정, 내 생각, 내 행동은 내가 책임진다. 나의 창조물이니까 그렇다. 내가 직면한 어려움들, 마주하기 힘든 이 사람! 내가 책임진다. 내 괴로움, 내 기쁨, 내 고통 역시 내가 책임진다. 만만찮은 이 상황, 이 분위기, 이 조건들. 모두 내가 책임진다. 다 나의 창조물이니까 그렇다.

이 모두는 평소 내 태도와 내 행동 패턴과 내 감정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내가 만들어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나는 쉽게 책임진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고 발뺌하지 않기에 책임진다고 하는 것이다.

책임지는 대상은 이뿐 아니다. 내 건강 상태, 내 직업, 내 실패와 성공, 내 재정 형편도 다 내가 책임진다. 내가 버리지는 않았으나 집 앞 쓰레기는 내가 책임진다. 내가 내리게 한 눈이 아니지만 골목에 쌓인 눈은 내가 치운다. 내가 뽑지는 않았지만 무도하고 무능한 정권은 내가 책임진다. 원인을 따지지 않고 잘못된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 원인을 찾고 원인을 바꾸고자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책임진다.

내 감정과 내 상황에 대해 책임진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다. 나 자신과 하는 약속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재창조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수용하는 것이다. 저항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남 탓을 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흔쾌히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 시작하려면 고요해야 한다. 이완이 먼저다. 마음속 분란이 잔잔해져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들뜬 상태에서는 질긴 습관의 탄성을 넘어설 수 없다.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게 잦아들고 고요하고 활력 있는 상태로 가야 한다.

여기까지는 오늘 새벽 수련 시간에 '오늘의 말씀'을 새기며 함께 나눈 내용이다. 그 누구도 '오늘의 말씀'에 딴지를 걸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통해 이런 말을 접했다면 얼마든지 시빗거리가 될 수 있으나 우리가 하는 새벽 수련 때는 모든 게 완전 수용이다.

"내가 다 책임지면 잘못을 한 저 사람은 맨날 저럴 게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상대의 잘못을 규명하고 바로잡는 데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내 삶을 재창조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내 감정, 내 느낌, 내 생각. 나아가 내 행동을 내가 참으로 바라는 쪽으로 바꾸어 갈 뿐이다. 손발에 흙을 묻히기도 하고 화를 내거나 슬퍼하기도 한다.

모두 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참으로 바라는 내 삶의 방향과 일치시킨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다. 깨어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우리 모임에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 3년여 된다.

이 모임의 이름은 '깨어남의 새벽'이다. 몸을 깨우고 마음을 깨우고 세상을 깨우는 모임이다. '오늘의 말씀 카드'는 1년 365일 매일 새벽 5시 전후로 발표된다. 브라마쿠마리스라는 단체에서 발표한다. 하루를 잘 시작하게 하고 하루를 지키는 생명수다.

만약 내일의 말씀 카드가 "모든 게 네 책임이야"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창조하는 것으로 새겨낼 것이다. 오늘의 말씀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용하면 내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된다.

/전희식 농부·〈습관 된 나를 넘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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