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15일 오전 행사 참석
대극장 무대 올라 5분가량 기념사 낭독
일부 "이승만 영웅화 관련 입장" 요구
총리, 별다른 대꾸 없이 기념사만 낭독
"왜 입장 안 밝히나" 불만 섞인 견해도

제64회 3.15의거 기념식이 15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서 열렸다. 3.15관련 단체 회원들이 '독재자 이승만 영웅이고 하는데' 대한 한덕수 총리의 입장을 밝혀달라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구연 기자
제64회 3.15의거 기념식이 15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서 열렸다. 3.15관련 단체 회원들이 '독재자 이승만 영웅이고 하는데' 대한 한덕수 총리의 입장을 밝혀달라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구연 기자

3.15 64주년 기념식에서 한때 작은 소란이 일었다. 최근 이승만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극장에 걸리면서 보수층을 중심으로 전직 대통령을 영웅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하자, 행사 참석자 일부가 공개적으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이승만에 대한 견해를 요구하면서다. 한 참석자는 “이승만 독재자”라고 외치다 경호원에게 제지받기도 했다.

15일 오전 10시께 창원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 대극장에서 3.15의거 64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한 총리를 비롯해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박완수 경남도지사, 홍남표 창원시장, 박성수 경남교육청 부교육감, 주임환 3.15의거기념사업회장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소란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낭독하러 발언대에 오르면서 시작됐다. 무대 앞쪽에 앉아있던 박홍기 무학초등학교 총탄 교문·담장 복원추진위원장과 허정도 전 창원대 겸임교수가 흰색 종이 피켓을 들고 “이승만 독재자”라고 외쳤다. 이들이 든 종이에는 ‘한덕수 총리님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을 영웅이라고 하는데 기념사 전에 입장을 밝혀주십시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5분가량 기념사가 이어지는 동안 이들은 종이를 내리지 않았다. 한 총리는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잠깐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대꾸 없이 준비한 기념사를 읽어나갔다. 한 총리는 “오늘은 3.15의거 64주년이 되는 매우 뜻깊은 날”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주신 3.15의거 유공자와 가족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1960년 3월 15일 바로 이곳 마산 시민들이 낱낱이 드러난 부정선거를 규탄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함께 일어섰다”며 “이 과정에서 열 두 분의 열사가 목숨을 잃었으며, 수많은 시민이 부상하거나 고문당하는 등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고 말했다.

박홍기 무학초등학교 총탄 교문·담장 복원추진위원장이 3.15 64주년 기념식이 열린 15일 창원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서 종이피켓을 들고 서 있다. /최석환 기자
박홍기 무학초등학교 총탄 교문·담장 복원추진위원장이 3.15 64주년 기념식이 열린 15일 창원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서 종이피켓을 들고 서 있다. /최석환 기자

한 총리는 또 “어떠한 폭력과 억압도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위대한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며 “불의에 행보하는 시민들의 외침은 우리 국민의 열망이 되었으며 마침내 4.19 혁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으로 일군 위대한 유산이며, 정부는 그 헌신을 잊지 않고 유공자 여러분의 명예를 되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기념사에서 원전과 우주항공, 방위산업 이야기도 강조했다. 경남이 미래 산업 메카로 크게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특히 원전 산업은 기후 위기 시대를 이끌 중요한 성장 동력이자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한 총리는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소형모듈원전(SMR) 등 원전의 무궁한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고 우리가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창원을 중심으로 한 경남 일대에는 원전 관련 기업만 300여 개에 달하며, 우리 정부는 이곳에 방위 원자력 융합국가 산단 조성, 글로벌 SMR 클러스터 조성 등 원전 선도국의 튼튼한 기반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규제 혁신을 두고는 더욱 속도를 내는 한편 인력 양성, 연구개발 투자, 금융, 세제 혜택 지원, 우주항공산업 육성에도 온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박홍기 무학초등학교 총탄 교문·담장 복원추진위원장이 3.15 64주년 기념식이 열린 15일 창원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서 성명서를 들고 있다. 그는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3.15 의거 진상규명 신청 연장과 무학초교 앞 총탄 교문 담당 복원,  후속작 제작 중단 등을 촉구했다. /최석환 기자
박홍기 무학초등학교 총탄 교문·담장 복원추진위원장이 3.15 64주년 기념식이 열린 15일 창원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서 성명서를 들고 있다. 그는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3.15 의거 진상규명 신청 연장과 무학초교 앞 총탄 교문 담당 복원, 후속작 제작 중단 등을 촉구했다. /최석환 기자

일부 참석자는 이날 이승만을 영웅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우려를 표하면서 총리가 이와 관련해 아무런 견해를 밝히지 않아 불만이라고 밝혔다. 박홍기 무학초등학교 총탄 교문·담장 복원추진위원장은 “이승만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며 “독재자이자 살인마를 영웅으로 칭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박 위원장은 “단체장 중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건국전쟁>을 보고 나서 이승만을 영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며 “그런데도 총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영화 건국전쟁이 3.15를 왜곡하는 방법

한 총리가 기념사에서 원전과 방위산업을 강조한 지점을 두고도 비판이 나왔다. 허정도 전 창원대 겸임교수는 “국무총리가 정부를 대표해 기념식에 참석했다면 민주주의를 중점으로 발언해야 마땅한데 마치 수출의 날 행사 기념사처럼 말하고 돌아갔다“며 ”평생 공직에서 주요 요직을 맡은 총리가 수준이 ‘저 정도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 놀랍고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허 전 교수 또 ”마산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했기에 돈을 나눠주겠다는 건가 하는 불쾌감까지 들었다“고 덧붙였다.

일부 반발 목소리에도 한 총리는 기념식이 끝난 10시 40분께 별다른 견해를 밝히지 않고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무학초등학교 총탄 교문 담당 복원추진위는 행사가 마무리되자 대극장 밖에서 기념사 때 들었던 종이피켓을 다시 치켜드는 등 추가로 규탄 발언을 했다. 성명도 발표했다. 3.15 의거 진상규명 신청 연장과 무학초교 앞 총탄 교문 담당 복원, <건국전쟁> 후속작 제작 중단 등을 촉구했다. 추진위는 ”진짜 영웅은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한 시민들“이라며 ”독재자 이승만을 영웅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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