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속죄·정화·깨달음 장소 의미
부활절 앞두고 일상 속 작은 광야 찾길

3월 31일이 부활절입니다. 모든 그리스도교의 가장 크고 중요한 축제이며 신앙의 근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교는 부활의 영광을 누리고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부활은 우연한 기회에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죽음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치르고 나서 이룩하신,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영광 중의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부활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모습은 그리스도교의 종파마다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속해있는 가톨릭에서는 부활 전 40일 동안 '슬픈 시기'를 지냅니다. 이것을 '사순시기'라고 합니다. 사순(四旬)은 한자 넉 사(四)에 열흘 순(旬)으로 글자 그대로 '40일 동안'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40일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4라는 숫자가 죽을 사(死) 자와 소리가 같아서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 40이라는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노아 시대에 하느님께서 사람들 악행을 심판하실 때 '40일 밤낮' 동안 비를 내리십니다. 이집트에서 모세를 따라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하기 전 40년 동안 광야에서 속죄와 정화의 시기를 거칩니다. 모세는 하느님 율법과 계명이 기록된 판을 받으려고 '시나이산'에 올라가 그곳에서 40일을 지냈습니다. 이 외에도 40이라는 숫자가 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는 곳은 많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고자, 40일 전부터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하며 속죄와 회개를 통한 정화 시간을 가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속죄와 정화를 하는 장소는 '광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사명을 광야에서 준비하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4장 1절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는 벌판, 평야, 개활지 등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유혹의 장소, 속죄와 고뇌의 장소,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는 고통의 장소로 자주 표현됩니다. 광야는 유혹의 장소이면서 깨달음과 새로운 시작, 거듭 태어나는 출발점인 것을 잘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구구절절 지루한 광야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실 것입니다. 감히 신앙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광야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제안해 봅니다. 삶과 일상생활 속에 작은 광야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복잡한 도심 속에 어디가 광야인가? 휴일에 건강을 위해 혼자 오르는 산은 어떠십니까? 해가 지는 가까운 바닷가는 어떠신지요? 멀리 갈 것 없이 늘 생활하는 아파트나 집 근처 조용한 산책로도 좋겠습니다. 심지어 출퇴근할 때 맞닥뜨리는 복잡한 자동차 안도 광야가 될 수 있습니다. 어디든 자신을 돌아보고, 무심코 지나쳐 온 실수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라면 좋겠습니다.

광야에서 스스로 침잠하여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을 결심을 하고, 내가 소홀히 하거나 피해를 준 이들, 마음의 상처를 준 이들을 보듬어 줄 준비를 한다면 어디든 광야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저만의 광야에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부활을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종교를 떠나 광야의 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삶과 미래를 만들기를 기도드립니다.

/백남해 천주교 마산교구 대방동성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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