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중독 빠진 소비자라는 괴물 많아져
생명철학 등 농촌문화 남긴 선물 지켜야

농사는 하늘의 것을 땅에서도 이루어내는 일이고, 농촌은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사는 곳이다. 신과 인간, 인간과 만물 관계의 평등, 모두 함께 사는 신명을 이상이 아닌 현실의 기쁨으로 누리는 삼위일체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과 시대와 사람이 함께 있었던 적이 있다. 산업화 이전 수천 년 동안을 "농사천하지대본(農事(者)天下之大本)"이라 부른 까닭이다.

지금 우리는 고작 300년 남짓한 산업화의 물질중심주의가 만든 편하고 이익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자본과 권력의 사슬에 짓눌려서 쓰레기나 토해내는 소비자라는 괴물이 되고 있다. 또 도시가 발달하면서 공유 상생의 토대인 농촌과 농업은 무너졌고, 농촌은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도시는 농촌에다 빨대를 꽂고 배를 불리고 체구를 키워 비만으로 널브러진 괴물로 변질했다. 농사와 농촌은 결코 게으르고 무능한 몽환 속의 병적인 그리움이 아니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목표다. 지구를 떠나 우주 공간 어느 지점에 있는 또 다른 별이 아니고, 극초음속 비행물체를 타고 가는 모험도 필요없이, 생각의 그릇을 키워 우리 스스로 자초한 물질의 중독에서 벗어나면 된다.

한국 농촌문화는 과거나 미래의 것을 수탈하여 현재를 만들지 않고, 현재를 비추는 태양의 햇볕을 동력의 근원으로 살아왔다. 농사는 곧 햇볕과 비와의 관계로 진행되는 문화다.

농사와 농촌이 먼 옛사람들로부터 이어받아 내려온 선물이 있었는데 그 기억을 떠올려 보자.

하나는, 하늘의 뜻이 반드시 땅에서도 이뤄진다는 것을 미더움으로 우리에게 안겨주신 생명 철학의 바탕인 칠성신앙이다. 인간이 별에서 왔다는 믿음이었다.

두 번째는 천지만물과 인간은 관계가 있고 그 관계를 '고맙다'는 뜻으로 노래한 '고수레' 의식이다. 세계 인류 중에서 이와 비슷한 의식을 지니지 않은 민족은 없다.

세 번째는,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 살면서 죄짓지 않을 수 없고, 죄에는 마땅히 벌이 따르며, 그 벌의 무게 정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데, 이 어려움을 풀기 위한 지혜가 참회와 용서였고, 참회와 용서가 이루어지는 곳이 신단수(神壇樹)가 있는 소도(蘇塗)였다. 이 또한 오래된 민족들은 다 지니고 있었다.

네 번째는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이웃의 마르지 않는 사랑법이 인정이었는데 인정과 인심을 생활 속에 뿌리내리게 한 공동체 정신을 '두레'라 했지 않던가.

이 네 가지 선물을 지금 우리는 지켜내지 못하고, 오직 돈과 권력과 편리의 상징인 기계 기술의 재주에 현혹되어 살아서 죽어가고 있다.

이 선물은 부끄럽지 않은 기쁨이고, 두렵지 않은 보람이며, 모두가 행복한 긍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소중한 선물을 모두 잃어버리고 쓰레기와 독극물과 살상무기들의 포위망에 사로잡혀서 키득대고 있다.

/정동주 시인·동다헌 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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