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악양면 폐교에 들어선 작은 서점
책 읽으며 꿈 키우는 문화공간 자리 잡길

지난 주말,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선배의 책방 개업식에 다녀왔다. 선배는 대학 시절부터 책방을 운영해왔고 지금은 진주의 명물인 '진주문고'를 운영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고향 하동에 서점을 하나 운영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 꿈을 드디어 현실로 이루어 기꺼이 하동까지 다녀왔다. 축하의 마음으로 갔지만 기쁨의 한구석에 묵직한 부담감이 있었다. 가뜩이나 책을 읽지 않는 시대, 도심도 아니고 읍 소재지도 아닌 폐교를 활용한 시골 서점에 누가 찾아갈까 하는 마음이 선배의 새 출발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서점은 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하동 악양면 생활문화센터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동이 귀향 인구 전국 1위의 군지역이라 하지만 그 유입인구라 해봤자 도시로 몰려가는 인구에 비하면 턱없이 적을 것이다. 시골 구석의 서점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올까 하는 염려가 나만의 것은 아니라 선배도 인사말에서 우리의 우려를 충분히 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모든 것들이 도심으로, 중앙으로 거대화를 향해 몰려드는 지금, 불 꺼진 지리산 자락에 지혜의 등불 하나 밝히고 고향의 따뜻한 이정표가 되고 싶었다는 말은 뭉클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한 일은 교사로 정년퇴직한 친구 한 분이 선배와 뜻을 같이하여 1년간 연중무휴로 근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친구분 또한 오직 고향을 위한 마음으로 서점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때까지 무급으로 근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장소에서 반가운 소설가 김탁환 작가와 평소에 궁금했던 유명학자 강수돌 교수, 이외에도 많은 분을 만났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분이 기꺼이 참석한 이유는 돈 안 되는 일에 그토록 진심인 두 사람의 소박한 꿈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선배가 직접 우린 맛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잠시 책방을 둘러보니 차의 고장에 세워진 서점답게 차에 관한 책들이 한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남이 먼저 본 책' 코너에는 독자들이 읽고 기증한 중고책들도 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새 책과 중고책을 함께 판매하면서 독자들의 선택 폭을 넓혀 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이전에 진주문고에 방문했을 때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심리 치유서를 진열한 '종이 약국' 코너도 있었다. 우울하고 상처가 많은 현대인이 마음의 상처를 약물로만이 아니라 책으로도 치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명이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진주문고를 성공적으로 운영한 노하우를 '하동책방'에 잘 접목한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띄었다.

폐교는 이미 생활문화센터로 운영되고 있었던 터라 하동공정여행 업체 놀루와, 카페 악양 등 작은 업체들이 입주해 있어서 잘 운영한다면 업체들끼리 시너지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센터 뜰에는 혼자서 책 읽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작은 오두막을 세워 봄이 오고 시설이 정비되면 악양 들판을 바라보며 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리라.

문득 오는 길 섬진강 변에서 보았던 마른 나무 끝 봉곳한 꽃눈이 떠올랐다. 지금 죽은 듯한 나목이 추위 속 열심히 생명을 키우듯 그렇게 하동책방도 봄의 희망을 길어올리는 중이었다.

한 무모한 늙은 청년의 꿈으로 이제 하동책방은 조심스러운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세상에는 돈보다 꿈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더 많다. 꿈에 꿈을 보태고 책에 책을 더하여 하동책방이 새로운 문화의 모델로 자리하게 되기를 바란다.

/윤은주 수필가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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