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문화·확증편향이 낳은 정치인 테러
노예 아니라면 삶의 주인으로서 판단을

서양 중세 시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의 모든 말과 행동은 오로지 신의 영광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했다. 신을 기쁘게 하고자 인간들은 신의 수족으로서, 노예로서 수백 년간 그렇게 살아야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반동으로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인본주의 사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오로지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그런 오롯한 시대일까. 안타깝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세를 지배했던 보이지 않는 신은 이제 인간들의 삶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는 수많은 신이 등장해 새로운 신자를 양성하고 있다. 오히려 그 신도들의 광기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근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과거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계란을 던지는 시민들이 종종 있었다. 그것도 테러라면 테러일 테지만 작금의 테러는 그 위험 수위가 한계를 넘어섰다.

지난 2일 오전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지 시찰 후 이동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0대 남성의 칼에 찔려 충격을 주었다. 사건을 저지른 60대는 살해 의도를 품고 접근해 이 대표를 습격한 것이었다. 이어 지난 25일 오후에는 국민의힘 배현진 국회의원이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한 건물에서 괴한에게 돌로 뒷머리를 17차례 공격당해 또다시 큰 충격을 안겼다. 심지어 돌을 든 그 테러범은 이제 15살밖에 되지 않은 중학생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런 광기 어린 행동에 이르게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짐작은 간다. 자기가 믿는 신에 반하는 다른 신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살아있는 사람을 마치 신처럼 받들고 그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써가면서 상대진영은 악마화하며 적대하는 그러한 팬덤이 새로운 신들의 시대를 열고 있다.

팬덤문화의 긍정적인 면을 부정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 플랫폼, 알고리즘 발달로 사람들의 편향성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소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이 구조적으로 심화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팬덤문화는 그런 확증편향과 만나 새로운 신들을 만들고 있으며 그 신자들의 극단주의 성향은 강화되고 있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상대 정당 지지자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조사를 하였는데 자그마치 50% 이상의 사람들이 상대 정당 지지자와 사회나 가족구성원으로 같이 지내기가 불편하다고 하였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불편하다는 사람 중에서 매우 불편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보수층은 30~40%, 진보층은 50%를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이 정도로 자신과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에 대한 관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앞으로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일들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의 시대는 끝났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발적으로 새로운 신들을 모시고 그들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다. 노예는 달리 노예가 아니다. 주인의 기쁨을 나의 기쁨과 동일시하면 그것이 노예다. 노예는 주인을 위해, 광신도는 신을 위해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도 아낌없이 내놓는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곰곰이 잘 생각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말이다.

/문일환 법무법인 지승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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