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철저히 배제한 친환경 행사
작은 불편 감수해야 지구온난화 막아

한겨울 날씨가 포근하다 못해 덥다.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좋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린다. 서민들 살림살이에 겨울이 가장 힘든 계절이니 난방비를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기후의 공습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는 역사상 가장 더운 한 해였다고 한다. 이런 영향으로 초록 낙엽을 보았고 한겨울에 열대야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통상 가을이 되고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는 겨울채비에 들어가 잎을 떨어낼 준비를 한다. 그런데 기온이 내려가지 않으니 나무의 생태계가 교란되어 초록잎 그대로 있다가 반짝 추위가 오면 속절없이 떨어진 것이 초록 낙엽이다. 자연을 이용하기만 한 인간의 오만이 이제 자연으로부터 어떤 되갚음을 받을지 두렵다.

지난가을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세계 산악인들과 영화인들이 함께 모여 산을 소재로 인간 도전과 모험을 그린 영화를 상영하고 시상도 하는 행사였다. 아무래도 자연을 사랑하는 산악인들의 행사여서인지 몇몇 특이점들이 눈에 띄었다. 행사는 일회용품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다. 손님들 식사도 예외는 없었다. 미리 도시락 용기를 지급한 뒤 지참해서 지정 장소에 가서 먹게 했다. 도시락 용기에 원하는 음식을 담아서 신불산 자락을 바라보면서 먹는 아침 식사는 남다른 멋과 운치가 있었다. 컵도 예외는 아니어서 종이컵 대신 다회용 컵을 제공했고, 행사장 곳곳에 컵을 회수하는 용기를 둬 재사용되게 했다.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일회용품을 썼다면 아마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일회용품을 자제하는 행위만으로도 그 영화제는 충분히 친환경적이었고 훌륭했다. 해마다 에베레스트에서 수거하는 쓰레기양이 엄청나다는데 이런 실천만 해도 상당한 양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 듯했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위험하고 오만한 종이다. 이익과 편리를 위해 이토록 엄청난 환경파괴를 저질러온 결과가 초록 낙엽, 한겨울 열대야로 나타나지 않는가. '낙엽이 갈색이건 초록색이건 무슨 상관이랴, 겨울이 조금 따뜻하면 좋지' 이런 안일한 생각이 불러올 엄청난 재앙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상승하는 현실을 대부분 해안 지역에서 경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상상할 수 없는 폭우, 태풍과 해일이 우리의 삶에 해마다 몰아닥칠 수도 있다.

얼마 전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가 자꾸 물에 잠겨 수도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해상가옥에 물이 차올라 이미 침대까지 못쓰게 됐고 더 이상 바닥을 높이기 불가능할 만큼 높였는데도 바닷물은 가족들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이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됐는데 문제는 그동안의 생활 방식이 굳어져 변화를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방법을 모르는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 온난화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무엇이건 실천할 수 있는 방법부터 하나하나 시작해야 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영화제에서 일회용품이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환경훼손이 멋대로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영화제의 의미가 퇴색했으리라. 작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온난화를 막는 첫걸음임을 UMFF에서 배운다.

/윤은주 수필가·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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