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창작 활동 제약하는 정부 지원금
공연 관람 등 작품 소비예산으로 전환을

'대한민국 문화도시'. 지난 14일 윤석열 정부가 부산에서 거창하게 '지방시대 비전 선포식'을 하면서 소위 'K 문화도시'라는 단어가 관심을 끌었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2019년부터 5개년 사업으로 전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법정문화도시' 정책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인데, 갑자기 마지막 단계에서 기존의 사업이 취소되어버리고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정책처럼 둔갑해 발표되었다.

뭐 어쨌든 선정만 되면 3년간 최대 200억 원을 준다고 하니 솔깃하다. 그러면서도 화려한 미사여구 뒤에 뒤통수 치는 한방이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불안감은 지울 수 없다.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문화도시 추진전략 및 지정 가이드라인'을 찬찬히 뜯어보면,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에 따라야만 선정될 가능성이라도 있겠다 싶다. '대한민국 문화도시 목표에 부합하는 성과지표 설정', '사업 자문 및 컨설팅', '모니터링 계획 등 성과관리계획' 등등.

지원에 조건이 붙는 건 정부 정책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지자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이 그러하다 보니 문화예술인들은 지원금을 받으려면 돈을 쥔 기관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당근에 중독되어 그 당근만 쫓으며 달려가는 당나귀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한 '자유로운 문화창조', '자유로운 문화누림', '자유로운 문화혁신'이 눈에 띄던데, 정말 자유롭게 해도 지원해 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글쎄. 사실 말이지 지원금 제도는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우선 지원금의 규모에 맞춰 작업해야 하고 제시된 조건에 맞춰야 할 때가 많다.

문화, 특히 예술은 무엇인가에 예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이다. 예술은 그야말로 자유의 표현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처럼 마음에 안 드는 예술인을 가려내고 압박하고자 블랙리스트를 만들던 그런 작태들은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또한,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정부가 방향성을 제시해서도 안 된다. 문화라는 게 이리 가자 한다고 이리 가고 저리 가자고 한다 해서 저리 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은 계륵 같은 존재다. 없으면 예술로 생활하기 어렵고 몇 푼 안 되는 그거라도 타 먹으려면 예술 활동을 능가하는 서류 작업에 적지 않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다고 100% 선정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예술인들은 '을'이 되어버렸다.

지원금 정책은 180도 바뀌어야 한다. 작업에 필요한 예산으로서의 지원이 아니라 작품을 소비하는 예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연을 관람하고 미술품을 사는 데 돈을 써야 예술인들에게 자긍심도 생기고 신바람도 날 것이다. 그래야 작품의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고 더 나은 창작을 위한 계기도 될 것이다.

/정현수 문화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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