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현상에 자신 심리 대입 은유로 풀어내
'0과 1의 유전자' 등 은유법 시의 맛깔 더해

성윤석 시인이 괜찮은 시집이 최근 발행되었다며 소개했다. 김현미 시인의 <우리의 어디가 사랑이었나>. 그의 약력을 보니 2019년부터 <샘터>라는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사물에 맺힌 감성들을 격이 높은 서정시로 치환하는 시를 주로 썼다"고 소개되어 있다.

시집을 펼치고 처음으로 대면한 글귀가 '격이 높다'여서 오히려 호기심이 반감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소개한 미사여구와는 다르게 '시인의 말'에서는 시인의 겸손만이 보일 뿐이다.

"시를 읽거나 쓰거나 생각하는 일은 끝없는 모욕을 당하는 것 같은 이 삶의 강가에서 떠나지 않고, 떠나는 한 방법이다./ 그 이상은 오히려 집착이고 그 이하는 기만이어서 먹고 화장실 가는 만큼만 무언가 해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거기까지다./ 의미심장한 은유에 대한 욕망, 치열함이 내게는 없다. (…) 내가 쓰는 글들은 그래서 '글'에서 ㄹ자를 하나 빼먹은 것처럼 가볍고, 꼭꼭 씹지 않아도 슬그머니 넘어가는 흰죽 같다./ 미량의 슬픔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보름 가까이 틈나는 대로 그의 시를 꼭꼭 씹어가며 읽었다. "너무 작아서 화병에 꽂을 수 없다/ 너를 생각하며 화병을 버렸다/ 이제/ 쓸모 없어진 마음의 한 부분을 덜어냈는데// 염려하던 대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도 되겠지라는/ 다른 마음을 품는다"('꽃마리' 일부) 작은 꽃 꽃마리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짚어보는 시인의 심리에 결기마저 읽힌다.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이니/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인 것과/ 겹치는 일이니"('바위와 소나무와' 일부) 김현미 시인은 자연의 일부를 시에 담지만, 그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에서 치열하게 움직이는 심리로 환원해 표현한다. "하지만 곧 벼랑 끝에서 멈추었어/ 슬픔이 산산 조각나 널리 밝혀지면/ 고독을 유지하기 힘드니까"('바위와 소나무와' 일부)

시 '횡단보도'에 들어섰을 때엔 시어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려요/ 0과 1의 유전자에 생을 걸어보아요// 신호등 눈의 색깔이 바뀌기 전까지/ 우리의 눈동자는 순한 갈색의/ 현재진행형 내일 지향적이죠"

0과 1, '가다'와 '서다', 어쩌면 자신의 선택만큼이나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재, 그래서 우리 눈동자는 연한 갈색도 아닌 진한 갈색도 아닌 '순한' 갈색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시인은 알고 있다.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혼자만 아는 돌아가는 길이 있어요/ 밝히고 싶은 이 비밀을/ 신호등 색깔에 맞추어 떠들어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군요" 아마도 그 비밀은 진실일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신호등 옆에서 그는 나를 알아보았는데/ 모른 척 지나왔어요/ 심지어 멈추어 서서 이름을 부르기까지 했지만/ 나는 안 들렸어요" 시인의 이중적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은유법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화두로 남긴다.

시인의 은유가 뜬구름같이 멀리 있는 듯하면서도 행간이 느껴지는 건 표제시 '우리의 어디가 사랑이었나'에서다.

"매섭게 핀 매화들이 하필이면 내 손목을 가늘게/ 베며 스쳤어요 차갑게 웃는 새벽 별이 있어서/ 정신을 잃는 일은 피했고요/ 아프다는 자극도 없이 샛별을 보며 가늠해 봤어요/ 우리의 어디가 사랑이었나"

'매화로 벤 손목',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시어들. '그림자만 남은 사람', '그와 가고 싶은 섬진강' '구름 빛깔 목련' '바닥이 있어 떠 있는 구름' 등. 돌이켜본다. 시인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나는 어땠을까.

여행작가이기도 한 최갑수 시인이 이런 말을 시집 뒷면에 남겼다.

"시를 쓰는 것과 잊는 것은 같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잊고, 잊으며 시를 쓴다. 그래서 우리는 이보다 더 좋은 날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삶을 여행했길래, 이런 시를 썼을까."

119쪽 사유악부. 1만 2000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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