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사내하청파업, 조선업의 위기가 초래
중공업 가족이 붕괴되자 위기가 시작됐다

51일간 선박 독을 점거했던 하청 노동자의 투쟁은 그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청 노동자 파업 이전에 조선업의 위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조선업의 위기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대우조선해양에서 인사 업무 등을 5년간 맡았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가 20일 마산YMCA 제97회 아침논단에 섰다. 그는 ‘조선업, 대체 뭐가 문제길래? - 대우조선 사내하청 파업과 매각, 꼭 챙겨야 할 것들’을 주제로 강의했다.

20일 오전 마산YMCA 아침논단에서 조선업의 위기를 진단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20일 오전 마산YMCA 아침논단에서 조선업의 위기를 진단하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다솜 기자

양 교수는 “대우조선해양이 공적자금을 받고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기초 체력을 높인 게 아니라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는 문제가 생겼다”며 “그동안 쌓여있던 문제가 드러난 것이 조선소 하청 노동자 파업 사태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저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중심으로 강의를 풀어냈다. 한때 조선소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중공업 가족’은 산업도시 거제를 유토피아로 만들었다. 그러나 도시를 지탱하던 일자리는 흔들리게 됐다. 중공업 가족의 붕괴에서부터 조선업의 위기는 시작됐다.

200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거제도 조선업 종사자들은 중공업 가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 조선업의 호황과 함께 기업문화활동, 민주노동운동이 뒷받침됐다.

당시 조선회사는 노동자에게 연공서열제와 정년 보장, 성과 공유, 회사 복지를 제공했다. 노동자는 미세작업관리와 작업장 혁신에 동참하고, 숙련에 대한 매진으로 보답했다.

양 교수는 “과거 중공업 가족이 가능했던 건 모두가 한 회사 정규직으로 일했기 때문”이라며 “하청업체 노동자가 더 많아지면서 현장은 힘들어지고 돈은 더 많이 들고 품질은 떨어져서 결과적으로 공적 자금까지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청업체 노동자가 크게 늘었다. 어느새 생산 부문 90% 이상을 하청업체가 도맡게 됐다. 노동 강도는 세지만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게다가 대도시에서 건너온 엔지니어 노동자가, 중공업 가족의 자녀들이 거제를 떠나기 시작했다.

양 교수는 “중공업 가족이 있었을 때는 모두가 혼연일체 되는 문화가 있었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를 많이 쓰면서 와해됐다”며 “대도시에서 온 엔지니어가 안착하지 못하고, 인구가 유출되는 지역적 상황까지 맞물리면서 조선소의 위기가 일어났다”고 짚었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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