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2개월 만에 걸음마 협의체
참여 주체들 전과 달리 소극적

정부는 특별고용재난지역 지정
사측 노조 활동 탄압 중단하고
노동자, 분리매각 반대 투쟁을

51일 파업으로 국민적 공감대
정·비정규직 임금차별 없애고
다단계 착취 구조는 혁파해야

51일 파업이 끝난 지 2개월이 되었다. 파업은 끝났지만, 대우조선 안에는 조용할 날이 없다. 7월 22일 노사 합의 사항인 폐업 업체에 대한 고용 승계 문제는 한 달 남짓 단식농성과 투쟁으로 이어졌고, 보복이라도 하듯이 조합원에 대한 통제와 차별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최근 2주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2명이 사망하였고, 여전히 인력난·아웃소싱·위험한 노동 등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여기다 대우조선의 분리매각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외국인 노동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아웃소싱 업체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과 정부는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과 지도부에 대한 형사 처분으로 복수의 칼을 들었고, 노동조합은 '노란봉투법 제정'과 또 다른 투쟁으로 반격을 하고 있다. 

열지 말았어야 할 대우조선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 남은 희망은 무엇일까? 그 희망의 몫은 노사정 모두이다. 7월 22일 노사 합의 내용에는 원·하청 노사와 정부가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고, 그 걸음마를 2개월이 지난 지금 겨우 떼고 있다. 노사 합의는 전국금속노조와 사내협력사협의회, 대우조선 원청 노사, 고용노동부와 경남도가 공동의 책임을 안고 있다. 그래서 이번 노사 합의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한국 조선산업에 끼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사안이므로 신중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시민사회계는 대우조선 파업을 계기로 조선업계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9월 14일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모습. /강인석 시민기자
시민사회계는 대우조선 파업을 계기로 조선업계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은 9월 14일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모습. /강인석 시민기자

◇뿌리깊은 문제 개선 = 첫째, 51일 파업으로 드러난 조선소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수주산업의 한계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산업은행과의 관계 정립, 대우조선 매각 문제, 재하도급 문제,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위험노동, 기성금 등의 문제, 아웃소싱과 물량팀의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차별 문제 등 조선소 고용과 노동 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노사정협의체는 제2의 파업 예방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노사정협의체에 참가할 단위들은 소극적이다. 특히 당시에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할 듯이 적극성을 보였던 단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디어졌는지 모르지만,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조선소의 근본 문제는 현재 노사 간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국가기간산업인 조선업은 현재 극심한 인력난과 다단계 고용 및 저임금 등에 직면해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고용위기지역'이 아닌 특별고용재난 지역으로 선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산업은 수주절벽에서 생산절벽으로, 결국에는 인력절벽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형수(뒷줄 왼쪽부터 여섯재)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지회 지회장 등이 9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조선업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강인석 시민기자
김형수(뒷줄 왼쪽부터 여섯재) 대우조선해양 거제통영고성지회 지회장 등이 9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조선업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강인석 시민기자

◇노조 권리 보장 = 둘째, 노동조합 권리를 보장해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헌법에 보장된 천부적인 권리다. 그러나 5개 대형조선소는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불법 엄단'을 외치는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에게만 법의 잣대를 들이댈 뿐 자신들의 불법에 대해서는 한쪽 눈을 감고 있다. 조합원이 있다는 이유로 업체 대표들에게 일상적인 압박을 가하는가 하면 '감시 대상 명단'을 만들어 조합원 취업에서 방해를 넘어 아예 막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 권리는 대한민국 전체가 완전하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지만, 조선소 같은 경우 더욱더 어렵다. 2021년 거제 한 중공업에서는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업체 전체를 계약 해지하는 일도 있었다. 여기 대우조선도 마찬가지이다. 조합원이 가입된 업체의 경우 특별관리를 하는 듯하며, 조합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보고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김모 씨는 지난해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집회에 두 번 나갔는데 사진이 찍혔는지 대우조선에 들어오지 못했다. 사연을 알아보니 부서에서 거부했다고 한다.

2021·2022년 교섭 당시 하청업체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노동조합을 인정한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탄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올해 51일 파업이 막 시작되던 때 원청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조선하청지회가 한 달 진수를 막는다고 해도 절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6월 22일~7월 22일까지 한 달여 진수가 막혔을 때도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퀴벌레'를 박멸한다고 세 차례에 걸쳐 수천 명을 동원했는가 하면, 공권력에 의존하고 폭력적으로 진압하려 한 것을 보면 원청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그저 소문에 그치지 않았다. 

◇함께 머리 맞대야 = 셋째, 노·사가 주체가 되고, 정부와 국회, 정치 세력, 노동단체, 시민사회의 협조가 꼭 필요하다. 

51일간 파업은 끝났지만, 노동조합 투쟁과 대우조선의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은 여전히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대우조선은 470억 원이라는 단군 할아버지도 벌떡 일어날 일을 왜 만들었을까? 지도부 5명에게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 제기를 한다고 과연 문제 해결이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현안은 대우조선 매각과 원·하청 관계 문제, 다단계 착취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부분이다.

현재 정부는 대우조선을 분리 매각하려고 하는 듯하다. 방산과 상선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은 국영기업으로 유지하여 공무원 수준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맞춰 나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해법이지만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한화 등 국내 자본에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주인은 대우조선 전체 노동자이지만 대우조선은 '주인이 없다'라고 말한다. 

대우조선 매각 문제는 당사자인 노동자(정·비정규직 포함)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이 인정하거나 존중될지는 미지수이기에 당사자들의 집중적인 투쟁과 활동이 필요하다.

9월 14일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모습. /강인석 시민기자
9월 14일 손해배상 금지(노란봉투법)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 모습. /강인석 시민기자

◇전화위복 적기 = 또 하나의 현안은 정·비정규직 차별과 다단계 착취구조를 혁신하는 것이다. 현재 정·비정규직 차별은 다른 산업에 비해 심각하다. 임금 차액은 50% 내외이며, 노동조건은 더욱 심각하므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다단계 착취구조는 이번 기회에 무조건 바꿔야 한다. 이번 조선하청지회의 51일 파업 과정에서 국민 공감대를 얻게 된 것은 하청노동자 임금과 노동조건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이다. 

연봉, 월급, 시급, 일당, 아웃소싱, 물량팀, 돌관, 알바, 사외 업체, 사내 업체, 포괄 임금, 프로젝트 등 다른 산업에서 볼 수 없는 고용·임금체계를 안고 있다.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고용·임금체계를 두는 것은 수주산업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사실상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정규직 고용구조(전체의 80%), 위험노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국민 공감대가 만들어진 현재 조건에서 정부와 국회 등 모든 정치·노동·시민 세력이 함께 나서야 한다. 

폭발은 대우조선에서 시작되었지만,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삼성중공업·삼호중공업 등의 대형조선소와 케이조선·성동조선 등 중형 조선소로 번져나갈 것이다. 그래서 한국 조선산업의 새로운 전망과 근본 대책이 절실하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대우조선이 전화위복할 수 있는 적기는 지금이다. 비록 갈등과 대립을 낳기는 했지만 51일 파업은 긍정적인 가치가 훨씬 크다. 이에 2022년 하반기 각 부문 주체들은 책임감을 안고 무릎 맞대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강인석 시민기자(조선소 도장노동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