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면서도 설득력 있는 은유법으로 자신의 삶 성찰

“비망록 적요(摘要)처럼 고즈넉한 삶따라/ 머물고 떠나듯 새소리 자오록하면/ 켜켜이 쌓인 정(情)도 바람에 꿰어둔 채/ 낮은 추임새로 몸을 섞는 기적소리/ 저물녘 풍물조차 비켜선 역사(驛舍) 뒤로/ 시나브로 멀어져간 시간의 바다여/ 또 다른 일탈을 꿈꾸어온 철길 위에/ 몇 땀 그리움 쌓여 묵은 맘이 젖는다” (‘간이역을 지나며·1’ 전문)

간이역은 기차가 작정하고 쉬는 역이 아니다. 내리거나 타는 승객이 있으면 서고 없으면 지나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시인 김미윤은 자신의 현재를 간이역에서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지점으로 본 듯하다. 잠시 머무는 동안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간이역을 지나며·2’에서도 시인은 자신을 객관적 시각으로 관조하고 있다. “떠날 자 떠나게 하고 침목처럼 가라앉는/ 인연은 마침표 되어 적멸로 채워지리니// 단색화 같은 세월이 허허롭게 걸린 역두/ 돌아올 수 없는 길로 흐린 기약은 흐르고// 소소한 풍경 속에서 조각난 눈빛을 줍듯/ 바람 끝 일몰로 타는 저 만수받이 플랫폼”

‘단색화 같은 세월’, ‘조각난 눈빛’, ‘만수받이 플랫폼’ 등 시인의 비유법은 낯설면서도 설득력이 있다. 이 시에서는 특히 ‘일몰로 타는 저 만수받이 플랫폼’이라는 비유는 기발하기도 하거니와 시각적 효과마저 선명하여 강렬한 감동을 준다. 만수받이라는 게 무당의 노래에 장구잽이 조무가 되받아 살대답으로 하는 노래이니 석양에 비친 역사의 풍경이 오롯이 상상된다.

김미윤 시인의 <간이역을 지나며> 시집에 실린 시 대부분은 표제시에서 보듯 4음보로 이루어졌다. 전통적인 율격이어서인지 읊기도 편하고 행마다 완결성 높은 문장 구조를 이루고 있어 이해하기도 쉽다.

강외석 문학평론가는 이 4음보에 대해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어떤 질서, 특히 한국의 경우, 우주 자연의 질서, 곧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4개 질서에 따른 사람살이의 리듬이고 화법인 것”이라고 표현했다.

강 평론가는 이 시집에서 물에 대한 서시 격 시는 ‘마산연가·1’이라며 “물의 원형의 하나인 나르시시즘의 그림자가 얼른거린다. 나르시시즘의 핵심은 자신에 대한 응시다. (…) 그의 응시는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해 객관성을 유지한 찬찬한 관조의 시선”이라고 했다.

“빛바랜 젊은 날은 꿈길마저 남루해/ 어섯눈 뜬 신새벽 말질로 속 뽑히고/ 국화 내음 행궈 시드런 몸짓을 따라/ 갈마산 된비알에 빗더서는 갯바람/ 천신호 고동 소리 목쉰 채 멀어진 후/ 거친 숨결마다 되록거린 물굽이여/ 끊지 못할 인연의 긴 세월 흘러가도/ 둥글게 못 살아 선창가 더 애틋한데/ 시간벽 빗장 풀 듯 섬그늘 안겨오면/ 그리움 만조 되어 가슴 깊이 밀린다.”(‘마산연가·1’ 전문)

여러 시편을 읽다 보면 김미윤 시인의 독특한 시작법을 발견하게 된다. 시는 길든 짧든 한 문장으로 끝낸다는 것이다.

김 시인은 마산 출생으로 1986년 <시문학> 추천, <월간문학>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문예한국>을 통해서는 미술평론이 <한국작가>를 통해선 문학평론이 당선돼 평론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녹두나무에 녹두꽃 피는 뜻> 등 4권의 시집과 <밭 속의 꽃밭> 등 4권의 사화집을 냈다.

도서출판경남. 175쪽. 1만 2000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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