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경남 가야유적을 찾아서 (18) 함안 신산고분군

신산마을 양옆 산 능선에 분포
4∼5세기 축조·25만 438㎡ 규모
1988년 지표조사로 존재 드러나

함안 아라국은 김해 가락국과 고령 대가야 못지않은 대국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기록이 중국 <삼국지>에 남아있다. 3세기 후반까지 한강 이남에 있던 마한 54개국, 변한 12개국, 진한 12개국 등 모두 78개 이름이 삼국지에 나오는데, 그 가운데 함안에 있던 가야국은 다섯 손가락에 드는 5대 대국으로 기록돼 있다.

가야 전기뿐 아니라 후기 때도 아라국은 큰 나라였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5만 군사를 이끌어 가야를 공략했던 서기 400년을 기점으로 앞 시기(1~4세기)와 뒤 시기(5~6세기)를 나눠보면 그렇다. 전기·후기 가야 모두에서 지속적인 번영을 구가했던 곳은 아라국이 유일하다.

대국이 일궈졌던 곳답게 함안에는 경남 지자체 중 가장 많은 고분군(122개)이 분포한다. 단순히 개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절차를 밟는 말이산고분군, 가야리 유적 등 주요 유적지가 함안에 퍼져있다. 유적이 많다는 건 조명받지 못한 유산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간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왕릉급 무덤 위주로 조사가 진행됐다. 대개 중하위 계층이 묻힌 문화유산은 예산 문제로 조사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 함안 신산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함안 신산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최근 군은 칠서면 회산리 안국산(343m)에서 남동쪽 신산마을 뒤편으로 뻗어 내린 능선(해발 20~110m)에 분포한 신산고분군을 주목하고 있다. 4~5세기께 축조된 가야시대 무덤이다. 신산마을을 경계로 갈라지는 두 개 산에 고분군이 분포한다. 산 가운데 마을이 조성돼 있고 마을 양옆으로 늘어선 산에 고분군이 만들어진 형태다. 유적은 1·2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능선 아래쪽에 목곽묘가 밀집 분포하고 그 위로는 석곽묘가 중복 입지한다. 유적은 4세기대 목곽묘에서부터 5세기 이후 석곽묘, 석실분 축조기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점유된 대규모 고분군으로 평가된다. 무덤 축조 중심 연대는 5세기 중엽, 규모는 25만 438㎡로 추정된다.

신산고분군이 최초 확인된 건 1988년이다. 창원대박물관 지표조사로 유적 존재가 드러났다. 박물관은 능선 하단에서 목곽묘를, 능선 상단에서 석곽묘와 봉토분을 확인했다. 능선 말단부에서 안곡산 중턱까지 걸쳐있는 대규모 고분군으로 보고 함안 외곽 지역 묘제와 유물 발전과정을 밝힐 수 있는 중요 유적이라 박물관은 판단했다.

▲ 신산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소형 목곽과 석곽이 밀집해 있다.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신산고분군 발굴조사 현장. 소형 목곽과 석곽이 밀집해 있다.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신산고분군 존재가 대내외에 알려진 건 1992년 창원대박물관이 함안 아라가야고분군 지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면서다. 그 뒤 1998년·2000년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 지표조사가 진행됐고, 2006년 창원대박물관 지표조사(문화유적분포지도-함안군)가 이뤄졌다. 봉분 직경 7m, 높이 1.2m 규모 봉토분 2~3기, 마을 건너편에 있는 산에서 고분군이 새로 확인됐다. 이 조사 이후 신산고분군은 1구역(14만 5020㎡)과 2구역(10만 5418㎡)으로 구분됐다.

2018년 문화재청에서 벌인 전국 비지정고분군 실태조사에서 신산고분군 2구역은 육안상 고분이나 고분과 관련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마을과 경작지 주변에 토기편이 다량 흩어져 있었으며, 경작지에 삼국시대 석곽묘가 분포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추정됐다. 근현대묘·경작지가 유적에 조성되는 등 원지형 훼손이 심각하다고 문화재청은 진단했다.

지난 22일 오후 4시께 현장에 동행한 천성주 함안군 학예연구사는 신산고분군이 지배계층이 아닌 집단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말이산고분군처럼 대형 봉분 형태가 아닌 대부분 소형 목곽과 석곽이 분포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환두대도 비롯한 철기류 출토
소가야·비화가야 토기도 확인
아라가야 외곽집단 무덤 분석

천 학예사는 "아라가야 외곽집단 무덤이 어떤 구조인지 대략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라며 "고분 밀집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했다. 이어 "무덤 내에서는 부장품으로 철기를 생산하는 데 쓰인 망치와 끌이 나왔다"며 "현재로서는 정확히 어떤 세력이 이곳에 머물렀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철기를 제작하는 집단과 연관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찾은 신산고분군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흐르는 광려천과 그 유역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여느 비지정문화재처럼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앞서 확인된 조사 결과대로 경작지와 민묘가 조성된 모습이었다. 북서쪽 정상부에는 삼국시대에 아라가야 세력이 만든 안곡산성이 위치했다. 안곡산성은 적대세력인 신라세력을 방어하려고 아라가야가 쌓은 산성이다.

신산고분군 1구역에서는 발굴작업이 한창이었다. 유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군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 맡겨 신산고분군 1구역에서 발굴조사(1000㎡)를 지난달 9일부터 벌이고 있다. 이 유적 발굴조사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첫 사례다.

▲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환두대도.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환두대도.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앞서 연구원은 2021년 신산고분군 정밀지표조사를 벌여 봉토분 4기·목곽묘 15기·석곽묘 39기를 확인했다. 고분군 성격을 파악하고자 지난 3월 시굴조사를 했다.

발굴조사 현장에서 만난 오재진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연구조사위원은 조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고분과 유물 100여 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환두대도를 비롯해 소가야, 아라가야, 비화가야 계통 토기가 나오고 있다"며 "나머지 유물들을 다 수습하고 나면 거의 200~300점 이상 유물이 수습될 거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함안지역은 원래 아라가야계통 토기 위주로 나오는 게 특징인데 말이산고분군도 6세기 넘어가야 대가야, 소가야 토기들이 나왔지, 그전에는 아라가야 토기 위주로 나왔다"면서 "그런데 여기서는 아라가야 전통 유물과 다른 지역 유물이 같이 나오고 있다. 그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안곡산성 아래쪽에 있는 신산고분군 축조집단이 낙동강을 매개로 주변국과 교류 창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 신산고분군 전경. 신산마을 양옆으로 늘어선 산에 고분군이 분포해 있다.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 신산고분군 전경. 신산마을 양옆으로 늘어선 산에 고분군이 분포해 있다.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지금까지 연구원이 진행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유구는 목곽묘 32기, 석곽묘 12기, 조선시대 분묘 11기다. 목곽묘는 소형과 대형 모두 확인됐다. 목곽묘와 석곽묘를 포함해 40여 기 유구가 발굴됐다. 1000㎡당 40기 이상의 높은 유구 밀집도를 보인다. 대형 목곽묘에서는 환두대도 등 철기류가 많은 한편 소형 목곽묘에서는 토기류 위주로 부장이 이뤄진 형태였다. 소형·중형의 석곽묘 대부분은 도굴돼 철기류 일부만 출토됐다.

군은 안곡산성과 그 밑에 있는 신산고분군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조사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많은 고분과 유물이 확인될 줄 몰랐다고 밝혔다.

천 학예사는 "가야는 '잡거'라고 해서 비화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등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살기도 했는데 여러 유물이 나오는 것이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인지 주목해 봐야 한다"며 "흥미로운 소재로 볼 수 있는 만큼 연구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와 논의해 봐야겠지만, 문화유산 성격 규명을 위한 추가 조사 여부는 내년께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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