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5) 헌법 보장 노동3권, 조선소에서는 그림의 떡

"국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국 조선소의 민낯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에 의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2022년 6월 오늘, 이곳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행사하고 있다. 7명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높이 20m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또 180㎝가 넘는 키의 노동자가 겨우 가로 세로 높이 1m의 철장을 만들어 그 안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는 시너 통을 부여안고 유서를 품은 채 절규하고 있다. 

▲ 왼쪽 사진부터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 한 조합원이 가로세로 1m 크기 철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시너와 유서를 품은 채 시위를 하고 있다.  /강인석 시민기자
▲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 한 조합원이 가로세로 1m 크기 철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시너와 유서를 품은 채 시위를 하고 있다. /강인석 시민기자

조선하청 노동자는 왜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할까? 왜 이들 노동자는 지금처럼 살 수 없다고 할까?

조선 강국 한국 조선산업 역사상 노동자 저항으로 진수가 연기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또 조선 하청노동자들이 합법적인 쟁의권을 가지고 파업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조선산업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데는 조선 강국이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파업 25일 넘도록 단체교섭 촉구
20m 높이서 노동자 7명 고공농성
한 명은 철장 만들어 들어가기도

◇파업 점거농성 25일째 = 차별과 저임금, 위험·장시간 노동, 다단계 고용구조의 종합백화점인 조선산업.

15m 독(dock)이 열리듯 실제 면모가 드러나 그 잘못이 바로 잡히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길 바란다.

그중 하나가 헌법과 노동관계법이며, 특히 노동3권이다.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 추구권, 제32조 노동권, 고용증진, 노동조건, 적정임금 보장권, 제33조 자주적인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지는 것은 그 어떤 노동자라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천부적인 인권이다. 그래서 헌법의 울타리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면 온전한 국민이 되지 못한다.

현재 대우조선에는 인간의 존엄성은커녕 바퀴벌레·쓰레기(대우조선해양 모 관리자가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에게 한 말) 취급받는 국민이 있다. 바로 하청노동자들이다.

25일째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파업과 점거농성을 하고 있다. 오늘까지 하청업체 대표와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진 대우조선과 한국산업은행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죽거나 말거나 진수가 되거나 말거나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이.

◇하청노동자들의 요구 = 그 대척점에 노동조합 인정이 있다. 한쪽은 헌법과 노동조합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인정하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한쪽은 노동조합의 확장을 우려하며 노동조합 인정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사 양측이 테이블에 앉아 제대로 된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무지와 무시에서 출발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서 말하는 단체협약의 요구는 통틀어 '전임자 요구, 사무실 제공, 조합원 교육시간 보장, 공동교섭' 등 네 가지뿐이다. 이 네 가지 요구가 왜 쟁점이 되는지 파업 25일째인 아직도 의문이다. 이 쟁점은 노동조합법 제24조(근로시간 면제 등)에 따라 노동조합 전임자를 요구할 수 있고, 제30조(교섭 등의 원칙)에 따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에 따른 단체교섭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므로 논란할 이유가 없는 초보적인 요구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방식은 기업별 교섭, 통일 교섭, 대각선교섭, 공동교섭, 집단교섭 등 다양한 교섭 형식이 있으므로 교섭 형태를 두고 논란을 벌일 이유도 없다.

노동조합 설립 신고 절차에도 주된 사무소 소재가 필수 항목이며,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660명 중 500여 명이 대우조선 내 하청노동자이니 사무실을 요구하는 것도,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조합 활동을 위해 교육시간을 요구하는 것도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이다.

그리고 노동조합법 '제9조(차별대우의 금지) 노동조합의 조합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종, 종교, 성별, 연령, 신체적 조건, 고용형태, 정당 또는 신분에 의하여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하므로 조합원에게 차별대우할 수 없으므로 공동의 요구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바퀴벌레·쓰레기 등 단어 사용
하청업체 대표·관리자 앞세워
노동자 간 갈등 유발하는 원청

◇방해하는 원청 = 그런데 왜 역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고 있는가?

대우조선은 국영기업이다.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산하의 한국산업은행이 결재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헌법과 노동조합 관계법을 앞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스스로 어기거나 거부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전국금속노조 소속이고, 개별기업 노동조합이 아닌 개인과 여러 개의 하청업체 소속의 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업자등록은 제각각이지만 대우조선 원청에서 기성금을 100% 받아서 업체를 운영하기 때문에 원청의 실질적인 지배권이 행사되고 있다.

공정회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공공연한 업무지시, 현장 곳곳에서 부서장을 비롯한 원청 관리자들의 업무개입, 지시·통제는 일상에서 늘 확인되지만, 이번 쟁의행위 과정에서 원·하청관계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났다.

▲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 조합원 2명이 손팻말을 들고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이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인석 시민기자
▲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소속 조합원 2명이 손팻말을 들고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이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강인석 시민기자

파업현장에서 현·책·연(대우조선 현장 직·반장 책임자 연합회)은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 폭언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서슴지 않고, 안벽 곳곳에서 하청업체 대표와 관리자, 작업자를 동원하여 물리적 충돌을 야기하고, 뒤에서 원청 관리자들이 밀면서 적극 개입하고 있다. 원청 관리자들이 포함되어 있는 금속노조본조위원장 명의의 오픈채팅방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서 조선하청지회를 박멸(?)하려고 한다. '처단, 하청지회 바퀴벌레들, 쓰레기, 박멸, 악의 무리, 멍멍, 사형수, 하청노동자 가족 식당 불매, 개소리, 몽둥이로 때려잡자' 등 입에 담지 못할 폭언과 욕설로 대우조선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지난 24일 진행된, 소위 불법 파업 중단 촉구 결의대회에 원청 관리자들은 문자와 유인물을 통해 원청 직·반장뿐만 아니라 현장 노동자, 심지어는 하청업체 대표, 관리자, 사무실 경리까지 동원하여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규탄하는 위력시위까지 진행했다.

 

사용자 개념 원청으로 확대
실질적 지배권 가진 산은 결단
생사 기로 노동자 살리는 길

◇산업은행 결단 필요 = 더 이상의 극단적 대치를 막아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서 확인되듯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 개념을 원청으로 확대해야 한다. 실질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산업은행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몸을 뒤척이기도 힘든 1m 좁은 공간에 시너 통을 부여잡고 목숨을 던지고 있는 조선하청노동자를 살려야 한다. 20m 고공의 블록 위에서 '우리가 옳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조선하청노동자를 살리는 것이다.

그 어떤 사정도, 이유도 없다. 오직 7명의 조선하청노동자를 구조하는 것에서부터 한국 조선산업의 희망을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한다.

/강인석 시민기자(조선소 도장노동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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