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경찰청 독립
그런데 다시 장관 치하 경찰국 만든다니

2017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1987>, 서울대 재학생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오로지 국가권력 유지만을 위해 고문, 협박, 감금 등을 자행하는 경찰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 준 영화다. 700만 관객은 잔인한 경찰에 울분하였고, 현직 경찰관인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집중하여 관람했다.

당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등 비노출 조직에 몸담았던 경찰관들은 왜 고문을 자행하고 더 나아가 당당한 모습을 보였을까? 영화 속에 나오는 형사들의 대사에 답이 보였다. "명 받들겠습니다." 상부의 명령이 곧 법이라고 생각하는 고문 경찰관이 대공처장의 회유와 협박을 받고 내뱉는 대사다.

고이 자란 청년이 영장도 없이 구금되어 고문을 받고 사망했는데 오히려 유가족을 협박하면서까지 받들었던 '명(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2013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변호인> 후반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재판정에서 고문 경찰관은 불법 구금과 고문을 주장하는 변호인에게 비웃으며 얘기한다. "변호사라는 사람이 국가가 뭔지도 몰라요." 분노한 변호인이 하는 말, "너무 잘 알지요. 헌법 제1조 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경찰관이 지키려 했던 국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안타까운 것은 위의 영화들은 모두 1980년대 내무부 소속 치안본부 경찰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청년을 최루탄으로 절명시키고 마산 앞바다에 수장한 경찰, 간첩 사건 조작을 위해 영장 없는 구금과 고문이라는 방법을 주저 없이 행사하였던 경찰을 두고 정치인들은 고민에 빠졌었다. "왜 이들은 국민이 아닌 국가와 권력을 더 보호하게 되었을까?" 1991년, 관련 학자들과 여야 정치인이 선택한 해답은 '경찰청' 독립이었다. 당시 내무부 소속이었던 치안본부를 경찰청으로 독립시켰고 장관의 개입 범위를 최소화했으며, 경찰의 견제를 위해 '국가경찰위원회'를 설치하여 위원의 자격과 권한을 명시하였다. 물론 권력의 입맛에 맞는 인사는 당장 사라지지 않았으나 경찰청 독립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닌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경찰이 되라"는 의미였으며 향후 잘못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아닌 경찰 스스로에게 있음을 법으로 확인시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만든 30년 역사의 경찰청이 흔들리고 있다.

얼마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시로 꾸려진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권고사항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며 전국의 전현직 경찰관들은 과거처럼 권력의 시녀가 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좋은 취지인 것으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의 인사, 예산권 등을 통제할 수 있는 가칭 경찰국 설치 등 꼼수 제도를 만드는 데 집중한 모양이다. 국민을 위한 개선이 아닌 새 정부의 장관이 경찰을 쉽게 주무를 수 있는 제도 발표가 임박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라 정치권, 언론에서 많이 걱정 중이고 이를 보는 국민도 답답할 것이다. 자문위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답하지만, 왜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아닌 장관의 권한 집중으로 해결하려 하는지 또한 검찰은 중립을 위해 정반대로 법무부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려 하는지에 대하여 답을 못하고 있다. 현직은 물론 퇴직한 경찰관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국민이 아닌 국가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오직 권력자의 '명'을 받들어 모시는 영화 속, 아니 실화 속의 경찰이 재현될 우려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두 영화를 대한민국 모든 경찰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이 함께 다시 보기 바란다.

/류근창 마산동부경찰서 양덕지구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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