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불공정 행태 끝내야 일자리 늘어
부조리는 덮어놓고 최저임금 탓이라니

지난해 6월 9일, 창원 한서빌딩 앞 거리를 오가는 시민에게 2022년 최저시급을 얼마나 받으면 좋겠는지 희망하는 최저시급에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하였다. 한 청년은 몇 초 고민하더니 빈 칸에 9000원을 적으며 "1만 원은 너무 많다. 9000원이 적당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청년에게 이유를 묻자,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였다. 청년은 정말 최저시급으로 9000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청년에게 최저시급 1만 원은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오랫동안 자본은 '민주노총=고임금 노동자'라는 생각의 틀을 씌워 노조가 없는 저임금 노동자와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노동시장은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 원청과 하청,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고착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순간,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곧 인생 목표이자 성공한 삶이라 말한다. 좋은 일자리 수보다 대부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위험한 작업환경, 고용이 불안한 나쁜 일자리다. 좋은 일자리는 매우 제한되어 있고, 일할 사람은 더 많으니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나오는 건 당연한데도 세상은 개인 능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린다. 나보다 약하다고 느끼는 대상을 혐오하고, 같은 노동조합에 속해있더라도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반대한다. 계급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고, 나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계단을 올라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하청관계로 묶여 있다. 대기업은 하청관계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한다. 중소기업 47%는 대기업 하청이며 원청 대기업은 하청 중소기업에 제조원가 강제 인하 등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2021년 코로나19로 불평등이 심해졌지만 국내 대기업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올렸다.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와 불공정 하도급 거래가 개선된다면 중소기업에 일자리가 늘어나고 숨통이 트일 것이다. 이런 부조리는 덮어놓고 경영계와 보수언론은 최저임금 탓이라 둘러대고 있다.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자영업이 치킨집이고 전 세계 맥도날드 햄버거 매장 수보다 더 많다고 한다. 그 많은 자영업자는 어디서 왔을까?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좋은 일자리가 적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을수록 경쟁이 치열하니 장사를 해도 먹고살기 어려운 구조다. 정부가 나서서 최저임금으로 노동자 생계를 보장해 먹고살고자 자영업에 뛰어드는 비율을 줄여야 한다. 프랜차이즈 회사는 광고비 명목으로 자영업자에게 수수료만 떼먹지 말고 인건비 일정 부분을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최저임금법이 만들어진 것은 1986년 말이다. 이듬해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구성돼 1988년 최저임금이 시행됐고 올해로 35년째를 맞았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023년도 적용 최저임금 심의를 위해 2021년 11월, 노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 결정요인에 생계비와 물가상승률 응답이 상대적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최저임금에 직접 영향을 받는 대다수 노동자는 평균 2.5인의 가구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핵심소득원이라는 점, 최저임금제도의 근본 취지, 국제기구 권고, 제도개선위원회 전문가 권고 등을 참고하더라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은 가구 생계비가 돼야 한다. 최저임금은 일자리 수가 아니라 노동자와 가족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김은정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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