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가치 하나에 매몰되면 매력 없어
개방과 포용에서 나오는 역동성 중요

일 때문에 경북 영주에 종종 간다. 시내를 조금만 걸어도 영주만의 특색이 드러난다. 학교 근처 보행자 안전 펜스에 그려진 마스코트가 '영주 도령'이다. 복건을 쓴 남자아이가 뛰어가다가 환하게 웃으며 앞을 보고 엄지척을 하는 모습. '선비문화'에 진심인 영주시가 선택한 캐릭터다. 영주에는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의 모태가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인데, 성리학을 처음 고려에 소개한 안향을 제사하려고 만들었다. 물론 그도 영주 태생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도 영주 사람이니 영주시가 선비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영주시는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된 1990년대 말부터 선비문화에 올인하다시피 하고 있다. 1998년 '선비', '선비정신', '선비의 고장' 등을 상표등록한 것이 출발이었다. 2008년 '선비문화축제'를 개최하면서 '한국선비문화수련원'과 '선비촌'을 조성했다. 2016년 '선비도시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고, 2018년 선비대상 조례를 제정해 매년 시상식을 열고 있다, 2019년부터는 선비정신에 입각한 인성 회복을 주창하며 '세계인성포럼'을 개최한다. 이들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가 '선비인재양성과'다. 민간의 호응도 있다. 선비정신 고양을 목적으로 결성된 시민단체가 상당수다.

도시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줄 구심점을 선명하게 갖고 있다는 건 행운이다. 특히 영주의 선비문화는 명확한 역사적 근거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데 영주시에 선비문화는 과연 축복이기만 할까? 혹시 반박이나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진리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도시 영주'는 조선시대 선비 전통과는 거의 무관하다. 이곳이 도시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기반은 일제 말기에 개통된 철도 '중앙선'이었다. 영주역 인근에 일곱 채의 관사를 지을 정도로(관사골) 일제는 영주 개발에 제법 정성을 쏟았다(강원도의 지하자원 수탈을 목표로 했을 것이다). 1960년대 영동선과 태백선이 연결되면서 전 국민의 겨울연료 연탄과 건설의 기본 시멘트가 영주에 모였다가 전국에 분배됐다. 일자리와 돈이 넘쳐났고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들었다. 게다가 중앙선으로 연결된 서울 청량리가 영주 사람들에게 먼 곳이 아니었다. 영주는 서울 최신 유행을 당일에 공유하는 매우 '트렌디'한 도시였다.

쇠락하는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구심점으로 도시정체성은 필요하다. 그 정체성을 만드는 방법은 도시 숫자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손쉬운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도시 구성원들이 하나의 가치를 선택한 뒤 나머지 가치엔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이른바 '몰빵'. 그런데 이 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뻔한 가치 하나에 매몰된 획일적인 도시는 지독하게 매력이 없다는 사실. 도시 매력은 개방과 포용에서 나오는 역동성에서 비롯된다. 영주시의 전성기가 딱 그랬다. 소멸을 걱정하는 지방도시가 회생을 꿈꾼다면 어떤 정체성에 주목해야 할까? 조선시대 향촌을 부활시킬 목적이 아니라면 다양한 가치와 생각이 각축하고 연대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요컨대 도시정체성은 명사가 아닌 동사여야 한다. 다음주 수요일 새로운 도시 지도자들이 탄생한다. 손쉬운 도시정체성에 매달리다가 되레 도시의 매력과 활력을 곤두박질 치게 만드는 오류는 부디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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