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작품산책 (13) 김인영 서예가

30여 년 경력 '예서'특히 능해
"작업할 때는 몸이 가는 대로
그럴 때 정말 좋은 글씨 나와"
11월 개인전 앞두고 준비 한창

경남미술협회전 같은 큰 단위 미술전람회에 가면 유화·수채화 또는 구상·비구상에, 한국화·민화·공예 등 다양한 장르 작품을 한 공간에서 만끽할 수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유독 서예작품 앞을 지날 때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개인적 성향 탓도 있겠지만 서예 장르를 몰라도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 서예가 어떤 매력이 있는 예술 장르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박금숙 경남서예단체총연합회장 소개로 30년 이상 서예를 한 미강 김인영(62) 작가를 7일 창원 마산합포구 남성동 송포서실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맨 먼저 던진 질문이 '서예(書藝)'가 글씨 예술인데, 이걸 어떻게 감상해야 예술적 감흥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막연한 생각이긴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정보 전달이 목적인데, 굳이 글씨가 좋으니 마니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지점의 의문 때문이었다.

▲ 김인영 작가가 '유어예'라고 글씨를 쓰다가 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 김인영 작가가 '유어예'라고 글씨를 쓰다가 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김 작가는 바로 "서예는 자기 수양과 교양, 학문과 예술, 예술 중에서도 도(道)와 통하는 고전과 명언, 성현의 아름다운 사유를 예술작품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라고 답했다.

그러고 보면 추사 김정희 글씨를 높은 경지의 예술작품으로 평가한다. 글씨가 그냥 정보전달을 위해 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면서도 약간 장난기 섞인 질문을 던졌다. 추사 글씨를 보면 어떤 획은 굵거나 가늘고, 또 어떤 글자는 크고 작아 제 맘대로인 듯 보이던데 오래 서예를 한 관점에서 보면 어떤지 물었다.

김 작가는 "이제야 추사 글씨를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 정도라 감히 평가하지는 못하지만 그 글씨체는 오랜 경륜이 쌓여야만 나올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어요. 글씨 속에 작가의 기품이 배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기품, 어쩌면 예술작품을 통해 관람자가 읽어낼 수 있는 최대 안목이 작가의 기품을 느끼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구상이나 비구상 작품을 감상할 때 화면구성, 여백, 선과 면, 색감을 통해 작가의 내공을 가늠해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창원 마산합포구 남성동 송포서실에 걸린 김 작가 작품들. /정현수 기자
▲ 창원 마산합포구 남성동 송포서실에 걸린 김 작가 작품들. /정현수 기자

김 작가는 서예 작품의 질은 글씨 하나하나가 품은 선의 질에서 평가된다고 한다.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의 질이라 생각하고, 선질은 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격과 학문, 또 기질에 바탕하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그래서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했던가요. 서예는 그 사람과 같습니다. 굵은 듯 가늘고 무거운 듯 가볍고 빠르고도 느리고 미친 듯 노래하고 직선인 듯 곡선인 자연스러움인 거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마음으로 골(骨), 육(肉), 근(筋)의 조화가 이뤄내는 게 서예입니다."

김 작가는 서예를 '활'에 비유했다.

"서예는 미술이면서도 스포츠이며 스포츠 중에서도 활과 같아요. 또 음악이기도 한데 그중에서도 한 번 그어서 음을 내는 바이올린 활과 같아요. 한 번 활을 떠나는 그 찰나의 순간이 그만큼 중요하지요. 붓은 필기구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도구여서 '유희도구'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봐요."

붓이라는 활을 통해 표현되는 글씨는 즉 화살이요, 바이올린 음이 되겠다. 그게 무념무상 무아지경에서 나온 것이면 우리는 흔히 내공이 높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김 작가는 서예 작업을 할 때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붓을 놀린다고 했다.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과 같아요. 한 동작 한 동작을 하면서 다음 동작을 고민하지 않잖아요. 그냥 지금까지 연습한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몸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거예요. 그럴 때 정말 좋은 글씨가 나와요."

글을 쓰면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야말로 무념무상인 상태에서 붓질하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하니 쉽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서예는 기본적으로 10년은 해야 먹을 조금 알 수 있는 수준이 돼요. 서예를 한 지 10년이 되니까 겨우 눈이 뜨이고 그때부턴 안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잖아요. 그건 서예에서는 통하지 않아요. 서예는 1만 시간이 되어야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제가 수련만 20년 이상 한 것 같아요."

▲ 김인영 작 '몽필생화-이백-붓끝에서 꽃이 피는 꿈'. /김인영 작가
▲ 김인영 작 '몽필생화-이백-붓끝에서 꽃이 피는 꿈'. /김인영 작가

수련만 20년,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덧붙이는 김 작가의 말에서 서예의 오묘함을 또한 느꼈다.

"스승님께서 제가 참 안 는다고 하셨는데, 또 한편으로는 안 늘어서 좋다고 하셨어요."

김 작가의 글은 일중(一中), 소헌(紹軒), 송포(松圃) 선생을 이어받았다. 서예에도 판소리의 계보처럼 그러한 흐름이 있다. 김 작가는 이어받았다는 표현보다는 송포 선생 문하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송포 최명환 서예가는 지난해 상상갤러리에서 연 경남원로 7인7색전에 작품을 내던 시기 갑자기 악화한 암 투병 끝에 해를 넘기지 못하고 영면했다. 수련장이기도 한 송포서실은 송포의 부인 천숙연 서양화가의 배려로 제자들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미강 김인영 서예가는 오는 11월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미강(微崗)이라는 아호는 우촌(尤邨) 심철호 선생에게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문하에서 10년을 배우면서 서예에 눈을 뜨고 송포 선생에게 예술을 배웠다고 했다. 서예를 하려면 전서에서부터 해서, 예서, 행서, 초서를 모두 섭렵해야 한다. 지금 그는 예서를 중심으로 글을 쓴다. 서실에 걸린 그의 글을 보니 예서뿐만 아니라 행초서가 함께 보인다.

글씨 쓰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자고 하니 화선지를 꺼내 붓을 놀린다. '유어예(游於藝)', 예술에 노닐다. 공자의 가르침으로 예술인들이 좋아하는 말이란다. 30여 년 경력의 서예인과 2시간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살짝 눈은 뜨인다. 김 작가는 현재 마산미술협회 서예 분과위원장이며, 한국미술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마산대와 경남대 평생교육원에서 가르치며 배우는 즐거움에 빠져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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