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대립 부추겨 이득 챙기는 국내 정치
공포에 현혹되지 말고 평화할 자유 찾자

흔들리고 불안해 보이는 남북관계도 새로운 한 해를 맞았다. 4년 전 평창에서 시작해 판문점과 평양에서, 그리고 싱가포르와 하노이까지 이어진 한반도 해빙 국면도 아스라이 잊히는 듯하다.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북한에 대하여 서슬 돋친 냉전의 언어들이 소환되고 있다. 다시 한반도의 봄은 올 것인가?

내가 근무하는 연구원 부근에 '청보리책방'이란 곳이 있다. 창원 가로수길에 철모르고 개나리꽃이 피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산책 겸 찾아다니다가 꽃은 못 보고 책방을 발견한 뒤 몇 번 방문한 공간이다. '꼬마평화도서관'으로 출발해 지금은 어엿한 시민 독서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책방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 그림책을 읽고, 음악을 같이 들으며 삶의 큰 변화를 체감한다고 한다. 함께 다정함을 느끼고 나누면서 자연스레 일상이 밝아졌다고 한다. 청보리책방 주인장은 '사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스스로 책을 통해 치유받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면 주변이 더불어 밝아진다고 강조한다. 주인장은 이것이 바로 평화임을 얘기한다. 내 마음의 평화, 내 삶의 평화, 내 이웃의 평화가 한반도 평화 만들기와 그리 멀고 먼 관계는 아닐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분단국가에서 국내 정치는 잊을 만하면 남과 북의 갈등·대립을 기회로 위기를 부추겨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곤 한다. 30년 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무산시킨 '훈령 조작' 사건. 대선을 앞둔 노태우 정부 임기 말이었다. 영화 <공작>의 배경이 된 이른바 '총풍' 사건. 25년 전 김영삼 정부 임기 말이었다.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북한 측 인사를 만나 선거 직전에 군사분계선에서 총격전을 벌여달라고 공작하는 사람들. 그 전과 후에도 '분단 정치 세력'이 많을 것이다. 분단 시대를 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풍경이다. 전쟁이 그리 쉬운가. 그래서 전쟁을 얘기하고 정치에 이용하는 것인가? 돌아가신 리영희 교수님이 80년대 말에 한국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숱한 민간인 학살사건들에 대해 쓰신 글을 보고 무거운 마음에 사건들과 희생자들을 표로 만든 적이 있다.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 민간인 학살사건,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사건, 문경 민간인 학살사건, 산청 시천면 민간인 학살사건, 함평…남원…임시수도 부산 민간인 수장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 리영희 선생이 발로 뛰고 조사한 희생자 수만 20만 명이 넘었다. 전쟁이 그리 쉬운가. 이제는 공포에 현혹되지 말고 평화할 자유를 만들어 내자.

한반도 평화는 감성적으로 접근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이 당연하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평화적 상상력과 평화 역량을 북돋우는 사람들 노력이 소중하다.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평화의 언덕에 함께 오르기 위하여 상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이미 평화의 풍경이 새겨져 있고 평화할 자유가 샘솟고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평화할 자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서로 치열한 전쟁을 하였던 중국과 베트남과도 화해, 교류, 경협을 이미 오래전에 하였는데 하물며 같은 동포끼리 못할 자유가 왜 없겠는가. 평화할 자유를 포기하지 말자.

남과 북의 관계는 서로 생각하는 바가 너무 달라서 습관적으로 외면하고픈 사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너무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서 언젠간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이다. 다시 만날 때를 상상하고 준비하자. 평화의 봄날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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