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개혁보다 수능 궤도 유지 체계 강해
개성 다른 아이들 성장 막는 기제 없애야

우리나라 교육은 입시 위주 교육, 권위주의적 관료행정,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열 등이 오랫동안 사회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개혁하려는 노력, 즉 국가교육과정 개정이나 대학입시제도 개선은 계속 시도되고 있으나 성공적으로 개선됐다고 볼 수 없다.

지난해 치른 수능 시험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서 출제 오류가 발생했다. 이 문항에 관해 유전학 전문가인 조너선 프리처드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고등학교 시험에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가 출제된다는 것이 놀랍고 인상적이다"고 했다. 또 최근 영국 BBC 방송은 우리나라 수능이 '세계에서 가장 고달픈 시험 중의 하나'라고 했다. 수능이 변별을 위해 고난도 킬러 문항을 출제하고 있으며 창의력과 사고력 함양에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 공부해 자란 우리 청소년들이 혹시 부당한 지시에도 묵묵히 인내력을 발휘할까 싶어 가슴이 아프다.

이와 같이 수능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심각하지만 정부는 대학입시에서 수능 비중을 높이고 있다. 대학입시 제도에서 개혁적인 성공 경로의 개척보다는 수능 궤도를 유지하려는 경로의존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문화가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주의적인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경로의존성이란 '시간적 순서에서 이전 단계와 이후 단계의 인과적 관련성을 의미하는데, 과거 선택이나 먼저 발생했던 사건이 미래 선택이나 후속 사건 범위를 제약하고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말한다. 또는 '특정한 정책이나 제도가 지속되는데 있어 관행에 익숙해지고 그에 의존하면 후에 그 경로의 비효율성을 발견하더라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근대 우리나라 학교는 사회적 지위 확보를 위한 중요한 통로 기능을 해왔고 사회적 기회 확장과 사회이동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경쟁이 촉발됐다. 우리 사회는 이미 확보한 계층 지위를 유지하고 대물림하려는 사회경제적, 사회문화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 매개에는 수능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선발의 공정성이 강조돼 수능의 경로의존성이 크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경로의존 발생 원인에는 변화에 발생하는 비용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현 제도 유지를 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기존 제도에서 편익을 얻고 있는 이익집단이 제도 변화에 따른 편익 상실을 우려하므로 제도 변화를 거부하거나 기존 제도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선발 공정성을 앞세운 수능은 학교 교육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정은 교과서 위주 수업에서 벗어나 학생 성장과 발달을 고려해야 한다. 한 명의 아이를 위해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수정·보완하며 동료와 수업을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더불어 교과 간 통합, 교육과정 재구성, 학생 참여형 수업, 인공지능 개인 맞춤형 교육, 스마트 단말기 보급, 회복적 생활교육, 민주시민교육, 전문적 학습공동체, 돌봄 정책 등은 우리나라 교육문화에서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벗어난 교육자치 결실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개성이 서로 다른 아이 한 명이 잘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활동에서 제약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는 기제들을 과감히 걷어내는 노력에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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