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풍경·소품 찾아
전국 곳곳 발품팔이는 기본
돈도 건강도 쏟아붓기 일쑤

지난 3일부터 18일까지 일정으로 김해시 장유동 남명갤러리에서 구상작가 최선미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에 걸린 작품은 거의 풍경화이고 정물화와 인물화가 몇 점 있다. 산과 들, 바다, 꽃병 그리고 여인과 누드. 어쩌면 평범한 그림이라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구상 작업을 하던 많은 화가들이 어느 정도 나이도 들고 경력이 누적되면 추상으로 그림세계를 갈아타는 것처럼 감상자들도 어느 정도 보러 다닌 사람이면 추상에 더 매력을 느끼는 뭔가 있다. 아마도 작가마다 다른 독특한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관람자 처지에서 그냥 작품 감상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이해의 단계까지 확장되면서 더 감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최선미 구상화가가 6일 김해 남명갤러리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소양강2'를 설명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 최선미 구상화가가 6일 김해 남명갤러리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소양강2'를 설명하고 있다. /정현수 기자

지난 6일 낮 12시 남명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그의 얼굴보다 깁스를 한 손가락이었다.

"작년 말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아트페어에 작품 여러 점을 출품했는데, 전시 준비를 하면서 좀 무리 했어요. 거의 마무리될 때쯤 몸이 갑자기 고꾸라지면서 손가락을 이렇게 만들어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 새롭게 내놓을 '그린'을 내놓지 못한 게 안타깝다 했다. '그린'이란 최 작가가 2020년 전시했던 '블루'처럼 색감을 깊이 있게 처리해 나름 콘셉트를 가지고 하는 작업 중 하나다.

사실 이날 만나기로 한 시간은 원래 오후 2시였다. 약속 하루 전날 전화로 일정을 미룰 수 없겠냐고 해서 2시간을 당겨 만났던 것이다. 오후 3시까지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아트페어 끝나고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피로가 쌓여 작업실에서 넘어져 손가락을 다쳐, 전시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 2021년 연말은 최 작가에게 악재가 겹쳤나 보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예전에 사고를 당해 왼쪽 눈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무리해서 작업하는 바람에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어요." 작업하면서 이런 저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웃으며 이야기는 하고 있지만 속앓이를 얼마나 했을까 싶다.

"그래도 이번 서울 전시는 잘 됐어요. 제 작품을 좋아해주는 마니아들이 계셔서 작품도 좀 팔렸고요."

마네나 고흐의 그런 작품처럼 최 작가의 작품도 관심 있는 어떤 사람들에겐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나름 개성을 지닌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 작가가 서울아트페어 때 일어난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 최선미 작 'HER 1'. /정현수 기자
▲ 최선미 작 'HER 1'. /정현수 기자

마음에 드는 풍경·소품 찾아
전국 곳곳 발품팔이는 기본
돈도 건강도 쏟아붓기 일쑤

"여러 작품 중에서도 최애하는 게 있어요. 전시는 하지만 팔기 싫은 작품이죠. 전 그게 제가 저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거죠. 그래서 작품을 걸면서 제가 스티커를 붙여놓아요. 그런데 제가 아는 컬렉터가 그 작품에 꽂혀서 돈을 더 얹어줄 테니 팔라고 해요. 이미 팔렸다고 해도 소용이 없어요. 나중엔 솔직히 말해요. 그렇다고 돈을 더 받고 팔지는 않아요. 전 지금의 제 수준에 맞는 그림 가격이 있는데 그것은 꼭 지키려고 해요. 간혹 컬렉터들에 의해 흥정이 이루어지는데 그런 게 정말 힘들어요. 만약에 가격을 내려서 팔 생각이면 소품 제작해서 내놓지, 제 성격이 그게 안 돼요."

그래서 최 작가는 전시를 한 번 하고 나면 비워지고 채워진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림을 그릴 때 보통 4~6개월 소요되는데 이때 드는 비용이 만만찮다는 것. 멋진 풍경을 찾고자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목이 구체적 장소로 명시되었구나. 적성강(전북 순창), 내린천(강원 인제 소양강 지류), 태백산, 설악산 백담사, 의성 산수유, 사리암 가는길(청도 운문사 사리암), 무우전 돌담길(순천시 승주읍)….

"어떤 풍경에 딱 맞닥뜨렸을 때 느낌이 와요. 저건 100호짜리야. 저건 80호."

그렇게 그림의 대상을 포착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니 비용이 안 들 수가 없다. 물감에 캔버스, 액자까지. 그것뿐만 아니다. 마음에 드는 정물화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스웨덴,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전 세계 온라인 소품매장을 뒤지며 적절한 제품을 구입해 배치(세팅)한다. 정물화 소재로 쓰이는 식물은 모두 국내에서 공수한 것이다. 최 작가는 전업인 까닭에 그렇게 작품을 위해 쏟아 붓고 나면 빈털터리가 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전시를 하면 꼭 필요한 만큼 채워진단다. 그림을 하면서 전업 작가로서 자신은 어떤 작가인지 물었다.

"진심이에요." 진심? 가식을 그림에 넣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사회는 가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진심으로는 버텨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작가로서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행복'이라고 한다. 창원대 미술학과를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결혼을 하고서는 아이들을 양육하고 하다 보니 온전히 그림만 그리는 게 소원이었다. 그게 이루어졌다. 그런데 희한하다. 그림만 그리는 데도 너무 힘들다.

▲ 최선미 작 'BROWN1'. /정현수 기자
▲ 최선미 작 'BROWN1'. /정현수 기자

인상주의 바탕 작품 빛·색 강조
누드 그려 종교적 금기 환기도
18일까지 김해 남명갤러리 전시

"행복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거를 다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구나. 건강해야 하는 거구나." 몸을 혹사하다 시력마저 잃고서야 얻은 소중한 교훈이다.

최 작가는 자신을 인상주의 작가라고 했다. 구상작가, 풍경화가, 인물화가 이 정도의 관점에서 생각했는데, '인상주의'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작품에 빛과 색의 역할이 강조된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누드는 왜 그리는지 물었다.

"금기를 말하고자 했어요. 제가 천주교인인데 종교에서 말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게 너무 많잖아요. 그런 걸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었어요. 사슴이 나오는 그림도 금기를 이야기하고자 한 거예요. 결혼을 하고 나서 알아차린 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현실이구나 하는 거였어요. 애를 셋 낳을 때까지 돌아가지 못하게 한 이유를 알게 된 거죠. 나무꾼보다 더 미운 게 사슴인 거예요."

전시된 그림을 돌아보면서 얽힌 사연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더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 속 여성은 얼굴만 보았을 때 한 인물이 아니다.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델은 한 사람이라고 한다.

"아는 동생이 자기 몸이 제일 예쁠 때 남기고 싶다 했는데 마침 제가 제안했고 그리게 되었어요. 그런데 얼굴이 닮다 보니 누가 알고 곤혹스러운 일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 이후에 다른 얼굴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최 작가는 이제부터 활동 시간을 낮으로 바꿀 거란다. 작품도 한동안 쉬고. 50대 중반이면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때도 되었다. 작업 때문에 또 그만큼 고통을 받은 상황이라면. 그런데 지금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머릿속으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완성하지 못한 '그린'에 대한 미련도 남아 있고. 최 작가의 마음은 여전히 콩밭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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