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구성 시조집, 서사 뚜렷
딸·어머니 등 가족사 그려
"이 시대 모든 이의 자화상"

황영숙 시조시인에게서 <매일 아침 매일 저녁>이라는 시조집을 전해 받고서는 매일 아침과 매일 저녁에 뭐 어떻게 살기에 하는 호기심이 불쑥 솟았다. 책과 같은 제목의 시조는 두 번째 순서로 실렸다. 첫 번째 시조는 지난해 코로나19로 만나지 못했던 지구 반대편의 딸을 그리워하며 쓴 '2020 해바라기'다. 여기가 아침이면 거기는 밤이라고 한다. 표제 시조도 그런 심정을 담은 것일까 하고 한 장을 넘겼다.

"아침 식후 30분/ 저녁 식후 30분//진해우체국 소인 찍힌 역류성 식도염 약/어머니 손수 쓰신 처방전 태평양을 건너 왔다// 불혹을 넘기도록 겉도는 이방에서/ 사는 일 왈칵왈칵 신물 올라 올 때마다// 몇 알씩/ 평정을 삼킨다// 매일 아침/ 매일 저녁"('매일 아침 매일 저녁' 전문)

진해에 사는 시인이 태평양 너머에서 살고 있는 딸에게 역류성식도염 약을 보냈나 보다. 그런데 화자는 시인 자신이 아니라 딸이다. 딸에게 감정이입해 신물처럼 '왈칵왈칵' 솟아오르는 그리움을 묘사해 더 애틋하다. 이달균 시인은 해설을 통해 이는 "한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의 자화상으로 읽힌다"고 했다.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그리움이 수북이 쌓인다. "잠 드신 아버지의/하늘 하얀 손가락// 도. 미. 솔 누르면 마디에서 소리가 나지// 건반이 되살아나는/신기한 오르골의 숲// 이제는 가락가락/ 휘어진 녹슨 건반// 주름 손 두드리다 나도 함께 잠이 든다// 모란꽃 이불을 적시는/ 시솔 레솔 반음계"('자장가' 전문) '자장가' 옆에 앉은 시조 '팬티라이너'는 지난해 돌아가신 아흔 넘은 어머니 이야기다. 황 시인의 시조집에는 가족 3대의 이야기가 주된 흐름으로 이어지는데,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이달균 시인은 시조 60여 편이 실린 시조집은 "잘 짜인 연극 한 편 같다"고 했다. "5부로 나뉜 작품들은 작은 주제로 연결된 서사적 구도가 뚜렷하다"고 봤다. 그래서 막을 열면서 '부모님께 바치는 헌정 시', 1막은 '우리 시대의 자화상', 2막은 '기다림, 발효의 시간', 3막은 '몰입의 시간, 시조를 빚다', 4막 '현장을 비추는 카메라', 5막 '촛불의 시간, 밀랍꽃의 개화', 그리고 막을 닫으며 '시인과 딸, 상상력의 교감'으로 나누어 해설했다.

세월이 느껴진다. 거의 마지막에 실린 시조 '석동 1402호', 시인의 집이자 딸이 뉴욕에서 전시한 개인전 제목이기도 하다. "갤러리 문을 열면 물소리가 들린다/ 힘줄이 느슨해진 할머니와 어머니와/ 아직은 힘이 팔팔한 오빠의 오줌소리/ 실개천으로 흐르다 강이 되어 만난다/ 다시 흘러 바다로 가는 먼먼 여행길을/ 서로가 한 몸이 되어 뜨겁게 출렁인다" 작가. 111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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