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답게 사는 모습 보여야' 압박감
누군가한테는 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군사법원법이 조금 바뀌어, 군사법원 재판관 중 법조인 아닌 일반 장교가 포함된 조항이 폐지됐다. 그동안은 영관급 이상이 심판관이 돼 군판사들과 함께 재판관을 구성했다. 심판관은 법적 소양이 있거나 인격과 학식이 충분한 사람으로 임명한다고 돼 있으며, 임명권자는 고등군사법원은 국방부장관이고 보통군사법원은 해당 부대·지역 책임지휘관이다. 사람 목숨을 좌우하는 형사재판을 객관적 검증도 거치지 않은 군인에게 맡겨놓은 군사법원법은 1962년 군법회의법으로 만들어진 후 지금껏 유지돼 왔다.

군사독재 유산 중 하나가 비로소 청산된 데는 직접적으로는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최근 사건들이 작용했고, 멀리는 오랜 세월 악법 개정을 요구한 이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선구적 역할을 맡았던 이를 들자니,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인권변호사 시절의 박원순과 인생 마지막의 박원순을 함께 떠올리는 것은 고통스럽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에 맨 주먹으로 맞섰던 사람이 설마? 이 불일치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직원을 수년간 성착취한 전직 서울시장 사건을 날조나 허위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할지 모른다. 유가족은 "우리 남편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지난해 추석 무렵 창원 한 백화점에서 과일을 구경하다가 매대 앞에 있던 남자 직원으로부터 시선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 경찰을 불렀지만 CCTV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며칠 뒤 가해자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됐다. 아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이 나올까 기대했던 내게 그 엄마가 한 말. "저는 제 아들을 믿거든요. 아들한테 사과하세요."

가족이 당사자를 가장 잘 안다고 믿는 것은 남보다 당사자 정보를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절대 다수 사람들은 가족한테만큼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한다. 폭력배 두목이라도 자식한테 나쁜 짓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전직 서울시장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포함해 자신의 지지자들, 인권변호사 시절을 포함해 자신의 인생 경로에 우호적인 사람들에게만큼은 긴장과 자기 통제를 하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여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한테는 얼마든지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 박원순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누군가한테는 풀고 싶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그는 차기 대선후보 감으로 늘 언급되는 대한민국 최대 자치단체장 자리를 오래 했다. 마음먹기에 따라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였다. 대학 3학년 한 학기 동안 과 학생회 총무를 맡은 나는 생선가게 맡은 고양이 행적을 했다. 학생회비는 내 파마 비용으로, 밥값으로 나갔다. 몇 년 뒤 민중당 사무실에서 총무를 맡았을 때 나는 더 대담해졌다. 20만 원 기부금에서 절반을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도덕성 따위는 그때 내게 없었다. 대가 없이 사회운동하는 사람이니 이만큼은 취해도 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비교가 적절한지 모르지만, 두 박원순의 분열을 이해해 보려고 내 전과를 끌어들였다.

그도 사회운동가 시절의 신산했던 삶을 어디에선가 보상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정도 권력은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 사람이었을 가능성과, 그의 마지막을 잇대어 본다. 자기분열이 인간의 속성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인지하는 것은 극히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무시하고 부스러기에 집착한다면 진실을 놓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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