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평론가인 저자 에세이 신간
고전작품 잘못된 미의식 파헤쳐
미술 속 웃음·박물관 역사 추적
감염병 대유행 시대 변화 설명

미술 관련 서적은 참 많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작한 조각에서 르네상스, 현대에 이르기까지 미술 역사를 명화와 함께 친절하게 설명한 책들은 재미있고 읽기도 쉽다. 그래서 어지간한 책들은 어느 것을 읽으나 비슷해서 더는 눈길을 끌지 못한다. 이번에 새로 나온 미술평론가 양정무의 <벌거벗은 미술관>은 미술사에 나타난 여러 사안을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담아 쓴 에세이다.

프롤로그에 소개한 니콜라 푸생의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1638~40)는 그림에 관한 해석이 재미있다. 그림에 나타난 목동들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다. 그건 묘비에 쓰인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는 글귀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르카디아는 낙원이어서 죽음이나 고통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묘비가 있다는 것은 '너희도 나처럼 죽을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하기에 목동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 고전 회화에는 사전 지식이 없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 많다. 또한 그런 도상학을 알고 나면 더 재미있는 것이 서양미술이기도 하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미술사와 미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시기 인종이라는 개념도 생겨납니다."(43쪽)

저자는 우생학적인 인종론을 주장한 스위스 학자 라바터가 그린 그림을 소개했다. 개구리에서 아폴로까지 인간 얼굴을 24단계로 나눈 그림인데 최종 단계가 '벨베데레의 아폴로'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이며, 유럽 백인이 그에 속한다고 했다. 라바터는 황인종과 흑인종은 그보다 아래 단계라고 봤다. 그래서 아폴로가 미의 기준이 되었고, 황금비율이라는 것도 아름다움을 객관적 잣대로 재려는 유럽인들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책에는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보이는 유려한 자세가 실제로 가능한 자세인가 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저자는 "좋게 말하면 이상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결과지만, 냉정히 보자면 뭔가를 감출 수밖에 없는 '위장된 자연주의'인 것"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미술에서 웃음이 사라진 이유를 추적한 부분이 재미있다. 저자는 이 글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고대 그리스 조각 아파이아 신전 한 귀퉁이에 있는 죽어가는 전사의 미소라고 밝혔다.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이 활짝 웃고 있을까? 이 미소는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이를 '아르카익(고풍스러운) 미소'라고 부른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에 이르는 동안에도 미술에는 웃음이 거의 없었다. 바로크 시대로 접어들면서 초상화에 조금씩 웃음이 드러난다. 또한 자연스러운 웃음과 억지웃음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명명한 '뒤센 미소'는 진짜 미소이고 반대로 눈가의 근육에 미동도 없이 입꼬리만 올려 가짜로 웃는 미소를 '팬암 미소'라고 한다. 가짜 미소를 그렇게 부른 이유는 팬암항공사 승무원의 웃음이 그러했다는 데서 붙여졌다고.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팬암 미소'를 짓고 있지 않나 하는 지적에 뜨끔하기도 한다.

▲ 알브레히트 뒤러 작 '한스 임호프의 초상'(왼쪽)과 '히에로니무스 홀츠슈어의 초상'. 이들의 심각한 표정은 자신을 강인한 이미지로 각인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책 갈무리
▲ 알브레히트 뒤러 작 '한스 임호프의 초상'(왼쪽)과 '히에로니무스 홀츠슈어의 초상'. 이들의 심각한 표정은 자신을 강인한 이미지로 각인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책 갈무리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고전은 없다'는 벗은 몸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고 오해가 낳은 환상의 결과물을 거론하면서 고정된 미의식을 짚어냈다. 2장 '문명의 표정'에서는 미술 속 웃는 표정을 추적해 왜 명작들의 박물관이 무겁고 어려운 곳이 되었는지를 풀어내고 있다. 3장 '반전의 박물관'에서는 박물관 역사가 근대 시민사회가 노력해 얻은 결과물이라는 점을 밝히고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공간으로서 기능을 설명한다. 4장 '미술과 팬데믹', 흑사병·스페인독감 같은 대역병 속에서 인류가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미술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지은이 양정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이자 한국미술경영학회 초대 회장이다. <그림값의 비밀> <상인과 미술> 등 여러 책을 펴내기도 했다. 창비. 292쪽.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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