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항의에 늘 마음 졸였던 나날
좋은 이웃을 만난다는 건 인생의 행복

아이를 낳고 두 번 이사했다. 모두 층간소음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는 소음에 취약했다. 아무리 삼 남매를 키우고 산다 한들, 새벽에 자고 있을 때도 시끄럽다는 아랫집 항의를 받는 건 억울하고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첫 번째 옮긴 집은 '땅콩집'이라 불리는 협소주택이었다. 주택이라 층간 소음은 없을 거라 기대했지만 벽간 소음도 있다는 걸 그 집에 살면서 알았다. 옆집과 생활 패턴이 다름은 비극이었다. 우리 가족은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고, 옆집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코로나 시대, '집콕'을 선택했지만 생활 소음은 이웃에게 그대로 스트레스가 됐다. 밤에 샤워하는 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밥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층간 소음 민원이 많이 증가했다는 뉴스에 달린 댓글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층간소음 고충을 고발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이웃이 설거지하는 소리까지 고스란히 다 들리도록 허술하게 만든 건설사와 그런 집을 팔 수 있게 허락한 제도가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이 소동에서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

결국 또 이사를 결정했다. 집을 옮길 당시는 창원 의창구가 투기 과열지구로 묶이기 직전이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봐둔 집은 일주일 만에 일억 원이 더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전셋집은 아예 구할 수가 없었다. 대출을 받고 팔자에 없는 매매를 하게 됐다. 어렵게 구한 집은 아파트 12층이었다.

우리 부부는 머리를 맞대어 고민했다. 이번에도 이웃 항의를 받으면 어쩌지. 아무리 뛰지 말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살아있는 생명체. 어떻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구속할 수 있단 말인가. 이사를 앞두고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였다. 층간 소음 슬리퍼를 미리 사서 신고 다니는 연습을 하고, 소음 흡수에 좋은 매트를 알아봤다. 그즈음 창원에 이사를 계획 중인 친구와 함께 주택을 보러 다닌 적이 있다. 중개사는 고급 주택이 많은 동네를 추천했다. 120평이 되는 터에 주차장과 텃밭이 있었다. 땅값만 6억 5000만 원이라는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게 지대를 높게 쌓아 건물을 올린 주택을 보면서 상상했다. 저 집에 살면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도 심장이 급격하게 뛰지 않겠지. 나는 좀더 평화로운 표정으로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겠지. 담 너머 보이지 않는 생활을 상상했다. 하지만 창원에서 단독주택을 마련한다는 건 로또, 꿈같은 일이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도 행여 이웃 항의를 받진 않을까, 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사는 할머니를 마주쳤다. "혹시 생활하는 데 시끄럽진 않으신가요?" "모르겠던데? 낮에는 애들 뛰어도 아무 상관없어요.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살아."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뒤통수에 대고 "덕분에 행복하게 삽니다!" 하고 외치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감격했는지 알 법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뛰지 마라' 소리를 달고 산다. 아무리 아래층 가족이 괜찮다고 말해도 크게 안심이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받은 항의 트라우마일까. 이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랫집 할머니는 마주칠 때마다 말씀하신다. "우리도 다 아파트에서 애들 키우고 살았어. 괜찮아. 마음 졸이지 말아요, 알았죠?" 그 말이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아이 키우는 죄인'은 그 한마디에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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