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착취·도박성 탓 엔씨게임 외면
우리 사회 모습과 유사한 점들 보여

국내 게임 제국에 몰락 징후가 보인다. 엔씨소프트 얘기다. 엔씨는 명실상부 국내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주식시장에서도 기업가치가 여느 대기업 못지않게 높다. 주당 가격이 80만 원대를 꾸준히 유지해왔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들어 주가가 거의 폭락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단 3일 만에 24%가 넘게 하락하기도 했다. 뭔가 특별하게 대형 악재가 터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신규 게임 '블레이드 앤 소울2'를 출시했다. 보통 게임회사 주가는 신규 게임이 오픈하면 폭등한다. 그 폭등세를 얼마나 유지하는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얼마 동안은 주가가 상승한다. 그런데 엔씨는 신규 게임을 출시하자마자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엔씨는 충성도가 높은 유저를 많이 확보하고 있던 회사다. 시간만이 아니라 돈까지 쏟아붓게 되면 충성도는 높아지게 된다. 특히 투기 목적이 개입되면 눈에 불을 켜고 몰입하게 된다. 리니지가 바로 그러한 게임 대명사다.

리니지는 돈이 되는 게임의 '길이요, 진리'다. 게임 재미? 그딴 건 필요 없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경쟁심을 부추기면 됐다. 내복만 입히고 칼 한 자루 쥐여준 채 들판에 풀어놓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경쟁했다. 현실세상에서도 늘 남에게 지고 살아왔는데, 게임 세계에서만큼은 질 수 없다는 심리를 부추겼다. 더 센 칼을 사야 했고, 더 튼튼한 갑옷을 입어야 했다.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도박성까지 넣었다. 운만 좋으면 몇백 배를 벌 수 있게 했다. 물론 그런 행운은 아무한테나 오는 건 아니다. 나는 아니지만 복권 당첨자는 늘 있듯이, 나는 아니지만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수많은 유저가 게임서버 코드 한 줄을 얻기 위해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써가며 혈투를 벌인 이득으로 국내 게임업계에서 제국을 형성했다. 그런데 지금 그 제국에 몰락 징후가 농후해진 것이다.

엔씨는 신작이라고 내놓아도 대부분 리니지 아류들이다. 리니지류 게임은 자기보다 약한 유저를 착취할 수가 있다. 경쟁심을 부추기는 게 목표라서 당연한 것이다. 신규 유저가 무시무시한 칼을 차고 있는 '린저씨'들 소굴에서 버티려면 막대한 과금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게임을 시작하는 유저가 갈수록 줄었다. 린저씨들이 착취할 만만한 대상도 없어졌다. 게다가 엔씨는 갈수록 도박성을 높이면서 '나노 단위'처럼 낮은 확률 아이템을 팔았다. 이 때문에 20년 넘게 충성해왔던 린저씨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싫어했던 사람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깊이 좋아했다가 배신 당한 사람이 증오심을 품는다. 그래서인지 엔씨 주가 하락을 기뻐하며 엔씨가 망하길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유튜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정도다.

공룡(다이노스)처럼 거대한 기업에 드리워진 몰락 징후들을 보며, 우리 사회 징후와 유사한 점들을 보게 된다. 엔씨가 흥하기 시작했던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이 만연해왔다. 기성세대는 부동산이라는 높은 성 위에서 안주하고, 젊은 세대는 코인이라는 동아줄을 잡고 구름 위로 올라가려고 시도하다 추락하고, 아예 오르는 것을 포기한 채 배달료 몇천 원 벌려고 오토바이로 길바닥을 '칼(블레이드)치기'하며 질주하다 '피와 영혼'(블러드 앤 소울)을 바친다. 기업이야 흥망성쇠가 일상 다반사라지만, 사회 몰락만큼은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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