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너무 의식 않는 오늘날 우리 사회
그에 앞장서는 정치인 보면 치가 떨려

역사의 사전적 정의는 인류사회 변천과 흥망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 했다. 왕의 명령을 받아 별자리 등 하늘을 살펴 기록하는 일을 하는 벼슬이 사관이고 그들이 기록한 것이 역사인데 그것을 정치 근본으로 삼았던 데서 출발해 이와 같은 정의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알만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유독 역사, 즉 기록에 남기는 데 집착이 대단했다. 세계적으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를 받는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만 해도 그렇고 집안마다 고이 간직해오는 족보 등 대부분 소실되고 남은 것들만 해도 이만한 평가를 받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토록 역사에 집착했던 것일까?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유교를 숭상한 결과물일 수도 있고 책을 존중하는 문화와도 관련 있을 것이다.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병인양요 때 집집이 서책이 없는 집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이 또한 맞는 근거일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일기도 쓰고 농사일지도 쓰겠노라고 가족들에게 큰소리 쳐 놓고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마저도 흐지부지 돼버린 것을 상기하면 선조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한데 그것이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 미쳤을 영향을 생각해보면 실로 대단한 사회유지 틀이 아니었던가 싶다. 누가 볼까 무섭고 거기다가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고 그것이 남는다는 것은 스스로 나쁜 일에 빠지는 것을 충분히 경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사전적 정의이다. 이게 무슨 역사와 관련이 있을까 싶을 터인데 남을 의식하는 것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역사는 큰 정의라면 염치는 일상생활 규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역사와 염치를 결부해보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너무 남을 의식지 않는 염치불고하고 세상이 급변하는데 대한 당황스러움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세상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는 이들이 소위 정치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니 치가 떨리는 것이다.

공자는 음률이 난잡해지는 것이 안타까워 마음에 드는 것들로 시경을 묶었다고 한다. 그 사회도 염치가 그 전만 못했던 모양이다. 우리 선조가 역사에 집착하고 염치를 강조했던 것도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방법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가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염치를 망각하면 그만큼 살기도 팍팍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천박해지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정치가 저토록 저급해진 것도 저들을 뽑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진영논리라는 것에 의해서 내 편, 네 편으로 편가름을 해서 도무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이쪽 저쪽 눈치를 보자니 그 또한 여간한 일이 아니다. 이래서는 더불어 사는 가치는 땅에 떨어진 것과 진배없으며 그래서는 좋은 세상으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굳이 정치인들에게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그들이 소위 우리 사회를 이끄는 대단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승자 독식이고 2등이 대접받지 못하는 구조라고는 하지만 상대방 흠을 찾아 인생을 송두리째 파헤치는 것도 모자라 아니면 말고 식의 막말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소위 우리 사회를 이끌겠다는 이들이 역사에 집착한 조상을 둔 후손일까 싶기도 하고 그들에게 역사의 무서움이 있을까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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