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도시 변화 모습 조사·연구
박영주 선생 발굴이 발간 계기

▲ 〈 마산번창기 〉 스와 부고츠 지음·하동길 번역·한석태 해제
▲ 〈 마산번창기 〉 스와 부고츠 지음·하동길 번역·한석태 해제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맑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땅이 굳어진 것이다."(16쪽)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이태 전인 1908년 마산에 살던 일본인 스와 부고츠(諏方武骨)가 쓴 <마산번창기(馬山繁昌記)>가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에 의해 재탄생했다. 당시 마산의 사회와 생활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사료다. 재일동포 하동길 씨가 번역했고 센터 초빙연구원인 한석태 전 경남대 교수가 해제를 맡았다.

전수식 창원시정연구원장은 발간사에서 "전통적인 농어촌이었던 마산 지역이 근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최초의 조사연구서"라고 소개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한국의 근대 식민도시가 어떻게 형성되고 건설되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또 한 교수는 해제에서 "원본에는 25쪽에 걸친 광고가 게재되어 있어 당시 마산의 사회경제상의 일면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라고 안내하고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 자문위원인 박영주 선생이 일본 내 대학도서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원본을, 출간한 지 110여 년 만에 발굴하여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며 발간 계기를 밝혔다.

▲ <마산번창기>에 실린 제1장 마산의 대관(개괄적인 내용) 첫 부분.   /책 갈무리
▲ <마산번창기>에 실린 제1장 마산의 대관(개괄적인 내용) 첫 부분. /책 갈무리
▲ <마산번창기>에 실린 1906년 1월∼1908년 6월(명치 39년 1월∼41년 6월)까지의 '마산거류 일본인 호구 증감월표'로 각국 거류지와 마산포·척산가(자산동)·쌍월가(산월, 완월)의 일본인 인구 증감을 기재한 책 일부.   /책 갈무리
▲ <마산번창기>에 실린 1906년 1월∼1908년 6월(명치 39년 1월∼41년 6월)까지의 '마산거류 일본인 호구 증감월표'로 각국 거류지와 마산포·척산가(자산동)·쌍월가(산월, 완월)의 일본인 인구 증감을 기재한 책 일부. /책 갈무리

책은 제1장 마산의 대관, 2장 마산의 관공서, 3장 지질 및 기후, 4장 위생 및 의사, 5장 교육기관, 6장 신도 및 종교, 7장 교통, 8장 호구, 9장 경제사정, 10장 마산의 잡록과 여러 근황,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산의 노래'는 어떤 게 있는지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야~ 그때는 이랬나? 호기심을 충족하는 정황이 종종 나온다.

"마산포의 시황은 신시와 그 양상이 확연히 달라 주된 것은 미곡무역상, 기타 잡화, 견면마포(비단 목면 삼베), 철물 등과 한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일인이 한국말을 잘 쓰며 이익을 내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도 활발하다. 강우기를 빼고는 연간 내내 번성한 거래가 이루어질뿐더러 매월 5일장, 10일장에는 많은 금액의 거래가 되어 그야말로 불경기를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마산포의 불경기 시기를 얘기한다면 음력 정월 상반기와 오랫동안 비가 계속 올 때이다. 우의가 없는 한인들에게는 우기가 원수이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도 적다."(103쪽)

"일본 술 여러 종류가 수입되고 있는데 최다량의 판매선은 해군부이다. 중등 이하는 이 고장에서 나오는, 즉 마산에서 빚은 향기로운 맛을 즐기는 이가 많은 것 같다. (…) 마산에서 청주를 제조하는 양조가는 신시에서는 아카마츠 상회, 나가타케 지점이, 완월동에는 고탄다 도미타로, 마산포에는 하라다 지점이 있다. 가격은 한 되 30전이 소매가이며 한 말에는 2원 70전 시세이다. 하루 판매량은 약 한 석에 도달할 때도 있다 한다."(106~107쪽)

"신시의 소방조는 1908년 2월 1일 밤에 마산 교마치 2정목 하나미자카란 곳에 있던 희락좌라는 극장에서 불이 난 것이 동기가 되어 조직되었다. 그다음 날 경찰관은 민단 사무소에 유지들을 모아 놓고 협정이 이루어져 마침내 80명의 소방조를 보게 된 것이다. (…) 마산포의 소방조는 그 후에 조직된 것이며 일본, 청국, 한국의 동맹인 것이다. 그 조합원은 인구수에 따라 산출된 것이며 다음과 같다. 일인 36명 청국인 4명 한국인 40명."(122~123쪽)

300쪽. 비매품. 055-225-7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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