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혈연에 근거하지 않는 현대 가족
차별 법 개정 반대하는 건 정당성 없어

건강한 가족이란 무엇일까? 법적인 혼인과 출산을 통해 구성된 가족이지만 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소통하지 않는 가족이 건강할까? 사실혼 관계에 있는 가족, 혹은 비혈연으로 묶여 있으나 가족 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소통하는 가족이 건강할까?

지난 2월 24일 국회 여성가족위에서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돼 법사위와 본회의 심의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건강가정', '가정'이라는 용어를 '가족'으로 대체하고 제8조 혼인과 출산 조항과 제9조 가족해체 예방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더불어 한부모·미혼모 가족이 받는 낙인과 차별을 예방하고자 '가족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이게 뭐 그렇게 큰일인가 싶은데 한국교회총연합의 대대적인 반발과 반대성명 등으로 매우 시끄러운 상황이 되고 있다.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당시에도 '건강가정'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란은 있었다. 어떤 가정이 건강한 것인지, 정상가족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또다시 규정하는 용어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정상가족'은 혈연으로 구성된 양부모와 자녀의 결합을 전제하고 있어 그 외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인 용어로 인식되었고 현재 이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건강가정'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기존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건강가정'을 가족구성원의 욕구가 충족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정으로 규정하고 있다. 모호한 이 정의는 실제로 부모와 미혼 자녀들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과 동일한 의미로 인식되었다.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각자가 생각하는 '건강가정'의 의미는 결국 그밖에 있는 다른 가족을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더불어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다양한 이유로 결혼하지 못한 동거 커플, 사실혼 관계에 있는 수많은 가족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가 되었다. 이들은 혼인과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가족과 마찬가지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지만 양육·돌봄을 비롯한 사회제도에서 배제되었다.

이처럼 기존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사용되었던 '건강가정', '가족'의 개념, 혼인과 출산, 가족해체 예방이라는 조항은 혼인과 출산을 하지 않는 가족, 제도 밖의 가족,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가족에 대한 차별을 강화해왔다. 한부모가족, 1인가구, 비혼가구, 공동체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이러한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은 너무나 반가운 일인 동시에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총연합에서는 이러한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 다양한 가족 형태의 차별 금지 조항이 '동성결혼 합법화 시도'라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동성혼을 반대하기 위해 다양한 가족에 대한 차별을 내재한 건강가정기본법의 개정안을 반대하는 것은 너무 편협한 동시에 정당성도 갖지 못한다.

우리 사회 가족은 빠르게 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가족은 더이상 혼인과 혈연에 근거하지 않으며 영원 불변한 공동체도 아니다. 가족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가 낮아지면 깨어질 수 있고 또다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혼인과 출산, 혈연에 기반한 전통적 가족관으로는 더 이상 건강한 가족, 나아가 출산율의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결국 건강한 가족, 출산율의 성장은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고 가족의 범주를 확장하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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