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낸 윤은주 작은도서관 관장 "인세는 장학금으로"
"멀리서 친구가 손짓을 한다.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모습에서 40년 전의 그날들이 단숨에 소환되어 왔다."('열일곱 살 무렵의 우리' 19쪽) 시골에서 마산으로 이사 온 까닭에 친구가 없던 화자에게 친구가 생겼다. 한 친구는 어려서 척추를 다쳐 평생 지팡이 신세를 져야 하는 애숙이고 또 한 친구는 그의 단짝 연실이다. 이 이야기는 연실이가 주인공이다. 그는 경남대 앞 해방촌에 살았고 비가 오면 집안의 모든 그릇이 물받이로 동원돼야 했다. 모두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연실이는 공장으로 갔다. 연실이를 만나려면 일주일에 한 번 면회해야 가능했다. 다니던 회사가 폐업할 때 연실은 노동 투쟁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흉기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아야 했다. 이후 연실이가 노동 운동가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을 때 서럽게 울었다. 지금도 출퇴근 시간 노동현장의 시위대를 볼 때면 연실이가 생각난다는 이야기. 읽으면서 어느새 화자의 처지에 감정이입되어 울컥하는 마음으로 연실을 보는 듯하다.
수필 형태의 산문은 대체로 작가의 실제 삶이 녹아든 데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기술하기에 감동의 울림이 크다. 게다가 작가의 이력을 알면 공감대도 더 크게 형성된다. 작가 윤은주는 현재 마산회원구에 있는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 관장으로 있다. 책과 깊은 인연을 맺고 살지만, 장애인과 어르신, 다문화 등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며 보람을 찾고 있다.
책에는 그가 활동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실렸다. 장애인부모회에서 강의하면서 만난 민머리의 여성, 받은 조의금을 우간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려고 아프리카로 떠난 선생님, 집 난간에서 키우던 방울토마토와 거름에 얽힌 사건 때문에 생긴 깨달음, 그리고 목욕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우리네 소소한 삶의 모습과 닮아서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윤 작가는 "지역의 무명 에세이 작가가 출판사와 정식 계약하고 책을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2019 청소년 독서문화캠프 작품집을 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출판 제의를 받았을 땐 정말 기뻤다"고 했다.
그래서 윤 작가는 오랫동안 이주민 인권과 교육 운동을 하면서 중도 입국한 청소년들의 어려운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금부터 발생하는 인세를 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