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낸 윤은주 작은도서관 관장 "인세는 장학금으로"

"멀리서 친구가 손짓을 한다.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드는 모습에서 40년 전의 그날들이 단숨에 소환되어 왔다."('열일곱 살 무렵의 우리' 19쪽) 시골에서 마산으로 이사 온 까닭에 친구가 없던 화자에게 친구가 생겼다. 한 친구는 어려서 척추를 다쳐 평생 지팡이 신세를 져야 하는 애숙이고 또 한 친구는 그의 단짝 연실이다. 이 이야기는 연실이가 주인공이다. 그는 경남대 앞 해방촌에 살았고 비가 오면 집안의 모든 그릇이 물받이로 동원돼야 했다. 모두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연실이는 공장으로 갔다. 연실이를 만나려면 일주일에 한 번 면회해야 가능했다. 다니던 회사가 폐업할 때 연실은 노동 투쟁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흉기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아야 했다. 이후 연실이가 노동 운동가 남편을 만나 결혼식을 올렸을 때 서럽게 울었다. 지금도 출퇴근 시간 노동현장의 시위대를 볼 때면 연실이가 생각난다는 이야기. 읽으면서 어느새 화자의 처지에 감정이입되어 울컥하는 마음으로 연실을 보는 듯하다.

▲ 〈 바다는 철문을 넘지 못한다 〉 윤은주 지음
▲ 〈 바다는 철문을 넘지 못한다 〉 윤은주 지음

수필 형태의 산문은 대체로 작가의 실제 삶이 녹아든 데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기술하기에 감동의 울림이 크다. 게다가 작가의 이력을 알면 공감대도 더 크게 형성된다. 작가 윤은주는 현재 마산회원구에 있는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 관장으로 있다. 책과 깊은 인연을 맺고 살지만, 장애인과 어르신, 다문화 등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며 보람을 찾고 있다.

책에는 그가 활동하면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가 실렸다. 장애인부모회에서 강의하면서 만난 민머리의 여성, 받은 조의금을 우간다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려고 아프리카로 떠난 선생님, 집 난간에서 키우던 방울토마토와 거름에 얽힌 사건 때문에 생긴 깨달음, 그리고 목욕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우리네 소소한 삶의 모습과 닮아서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윤 작가는 "지역의 무명 에세이 작가가 출판사와 정식 계약하고 책을 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2019 청소년 독서문화캠프 작품집을 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출판 제의를 받았을 땐 정말 기뻤다"고 했다.

그래서 윤 작가는 오랫동안 이주민 인권과 교육 운동을 하면서 중도 입국한 청소년들의 어려운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지금부터 발생하는 인세를 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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