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도 수확물도 똑같이 나눈 홍길동
소득과 이념 양극화 깊은 요즘 간절해

조정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갈 곳은 하나건만 가는 길이 여러 갈래라 붕당을 짓고는 제 길만 올곧은 외길이라 삿대질이 하늘을 찌른다. 시퍼렇게 멍든 하늘이 이내 무너질 듯하건마는 저들은 따로 솟아날 구멍이라도 있는지 내려앉든 쪼개지든 그건 사돈네 쉰밥이다.

이들을 뒷배로 두고 서로 어깨를 건 대지주 토호들은 소작인들 명줄을 틀어쥐고 골골이 들어앉았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사냥한 짐승 똑같이 노나 가지던 들에다 금을 긋고 울을 치더니 애초부터 제 손에 뚝 떨어진 것인 양 사람을 부려 농사를 짓고 짐승을 길러 그 소출을 걷어간다. 그러니 지주 곳간 볏섬에는 새싹이 가지를 치는데 소작인 뒤주에는 거미줄이 가지를 친다. 밥술이나 겨우 뜨게 남겨놓고 쓸어가니 분통이 터지지만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직접 소작을 부치는 이들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지주가 마름을 두어 맡긴 마을의 소작인들은 겹으로 훑어가니 하루 벌어 한 끼 밥사발도 채우기도 어렵다. 이들의 원성이 하늘에 닿았건만 눈만 치떠도 소작을 떼이니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그러던 차에 빼앗긴 들에 한을 품은 홍길동이 있었다.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못하고 빼앗긴 것을 내놓으라 못함에 의적이 되어 조정과 지주를 상대로 싸우더니 한 고을을 차지했다. 그는 고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노느매기를 약속했다.

우선 마름을 없애고 그에게 소작하는 이들에게 직접 땅을 맡겼다. 추수를 하면 농사짓는 데 들어간 비용을 제외하고 수확물을 모두 똑같이 나누게 했다. 식구가 많든 적든 어린아이든 늙은이든 한 사람당 한몫으로 나누었다. 하루에 쟁기질을 열 두락 가는 사람과 일곱 두락 가는 사람에 차등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책임도 노느매기로 했다. 흉년이 들어 나눌 곡식이 적으면 똑같이 식량을 줄였고 농사를 더 지으려 땅을 사거나 농기구를 새로 장만하면 너 더하고 나 덜함 없이 똑같이 추렴을 했다.

한두 해 우왕좌왕하다 갈피를 잡고 자리를 잡더니 근동에서는 따르지 못할 부유한 고을이 되었더라.

이웃 고을에선 지주의 착취에 마름까지 거들어 피맺힌 원성이 하늘에 닿고 없는 살림은 더욱 기울어 식은 아궁이에 들짐승이 집을 지었다. 부잣집 저택에 고대광실 새 기와가 오를 때마다 마을에 빈집이 늘어났다. 한 부자 나니 삼동네가 망해 나갔다. 농사지을 이가 떠나고 들이 쑥대밭으로 변하기를 기다렸다가 큰 물 건너 지주들이 헐값에 들을 차지했다.

가마우지를 길들여 물고기를 잡는 낚시 방법이 있다. 잠수와 수영 실력이 뛰어나 물고기를 잘 잡는 가마우지를 며칠 굶긴 다음 목을 숨이 막히지 않을 정도 줄로 묶는다.

강으로 나가면 배고픈 가마우지는 열심히 물고기를 잡지만 목에 묶인 줄 때문에 넘길 수가 없다. 이때 어부는 줄을 당겨 목에 걸린 물고기를 빼앗고 다시 물에 놓아주어 또 잡아오게 한다. 하루 종일 사냥을 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줄을 풀어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물고기만 삼키게 한다.

지금 세상살이도 이 잔혹한 사냥에 이용되는 가마우지와 다를 바 없다. 능력주의는 오만과 굴욕의 골을 깊게 나누고 불평등한 소득재분배는 빈익빈 부익부를 부추겼다.

사회 양극화로 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방면에 중간이 사라지고 모 아니면 도로 내달린다. 최고 부자 8명이 가진 재산이 소득 하위 계층 38억 명의 재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세계 인구 절반의 재산을 가진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겐 내일 아침이 무서운 나날이 이어지는 요즘 '노나메기'를 외치다 앞서 가신 한 어르신 말씀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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