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연 모회사 산켄전기 적자 핑계로 기어코 문 닫아
"위장폐업에 끝까지 투쟁" 노동자들 삭발로 복귀 다짐

한국산연 노동자 16명이 결국 거리에 내몰렸다. 지난해 7월 '2021년 1월 20일 자로 폐업(한국산연 법인해산)하게 됨을 알려드린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던 한국산연 모회사 산켄전기는 20일 폐업을 강행했다. 200일 가까이 폐업 철회를 요구해왔던 한국산연지회는 "그럼에도 계속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연대 투쟁과 폐업 = 지난해 7월 16일 이태흥 대표이사 이름으로 낸 공지에서 한국산연은 "회사 회생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누적손실로 더는 정상적 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며 폐업 이유를 밝혔다.

특히 사측은 "전 종업원은 단체협약 제44조 3에 따라 6개월 후인 2021년 1월 20일에 당사와 근로관계가 종료됨을 알린다"고 밝혔다. '산켄전기가 단협(회사 폐업, 축소, 이전 등으로 해고·감원 때에는 6개월 전에 노동조합에 통보)마저 무시했다'는 노동계 비판을 의식이라도 한 듯, 시기를 거의 딱 맞춰 폐업·근로계약 종료일을 잡은 것이다.

지회는 한국산연 폐업이 '위장 폐업'이라며 반발했다. 산켄전기가 '한국산연 누적 손실 583억 원'을 말하면서 2018년부터 160억 원을 들여 ㈜EK(옛 ㈜지흥)를 인수, 흑자를 보는 상황을 근거로 제시했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산연지회가 20일 한국산연 앞에서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현장 복귀 의지를 다지며 삭발을 하는 오해진(오른쪽) 지회장과 김은형 부지회장, 폐업을 강행한 모회사 산켄전기에 철회를 촉구하는 투쟁 참가자들. /이창언 기자
▲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산연지회가 20일 한국산연 앞에서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현장 복귀 의지를 다지며 삭발을 하는 오해진(오른쪽) 지회장과 김은형 부지회장, 폐업을 강행한 모회사 산켄전기에 철회를 촉구하는 투쟁 참가자들. /이창언 기자

7월 13일 천막농성에 들어간 지회는 이후 국회, 한국산연 사장 자택 앞, 산켄전기코리아, 주한일본대사관, 산켄전기가 160억 원에 사들인 ㈜EK 일대 등에서 선전전·1인 시위를 펼쳤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는 요구서도 직접 전달했다.

그 사이 사측은 회유 작업을 했다. 지난해 9월께 산켄전기 측은 한국산연 노동자에게 '통상임금 60개월 지급'을 조기 희망퇴직에 따른 위로금으로 제안했다. 이 제안에 사무직 노동자들은 모두 응했지만, 한국산연지회 조합원 16명은 거절하며 투쟁을 이어갔다. 12월 말 산켄전기는 '통상임금 52개월 지급'을 재차 제안했다. '이번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퇴직위로금을 지급받지 못할 것이다', '회사가 폐업을 철회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는 내용의 호소문도 보냈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다시 거절했고 투쟁에 집중했다.

지회 투쟁에 시민사회도 힘을 보탰다. 노동·시민사회·진보정당 등은 지난해 9월 한국산연 청산 철회·생존권 보장 경남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책위를 중심으로 도내 130여 개 단체는 산켄전기와 일본 후생노동성·경제산업성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일본에서도 '한국산연노조와 연대하는 사이타마 시민모임', '한국산연노조를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됐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일본 산켄전기 본사(사이타마현 니자시)와 영업소 등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지난달 22일에는 국회의원 13명이 산켄전기와 일본 정부 당국에 '한국산연 폐업 중단과 한국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공동서한'을 보냈다. 지난달 30일 김경수 도지사와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과 소속 경남도의원·창원시의원·허성무 창원시장도 각각 산켄전기에 서한을 보내 한국산연 폐업 철회를 촉구했다. 창원시의회는 19일 '외자기업 한국산연의 폐업 중단(철회) 촉구 건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지회와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건 같다. △한국산연 청산 철회 △한국산연 특별 세무조사 △외국투자자본 먹튀 방지 법안 △산켄전기 OECD 다국적 기업 지침 이행 조사 △산켄전기의 한국산연 재투자·새 제품 생산 촉구 △노조탄압 일본기업 규탄 △산켄전기 정보 공개·정부 개입 △외투자본 철수로 일자리 잃은 노동자 생계·재취업 대책 등이다.

지회는 "우리의 요구는 처음도 현재도, 끝도 살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산연지회가 20일 한국산연 앞에서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현장 복귀 의지를 다지며 삭발을 하는 오해진(오른쪽) 지회장과 김은형 부지회장, 폐업을 강행한 모회사 산켄전기에 철회를 촉구하는 투쟁 참가자들. /이창언 기자
▲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산연지회가 20일 한국산연 앞에서 폐업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현장 복귀 의지를 다지며 삭발을 하는 오해진(오른쪽) 지회장과 김은형 부지회장, 폐업을 강행한 모회사 산켄전기에 철회를 촉구하는 투쟁 참가자들. /이창언 기자

◇끝까지 싸울 것 = 20일 오해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산연지회 지회장과 김은형 부지회장은 '삭발'을 하며 현장 복귀 의지를 다졌다.

이날 지회와 금속노조 경남지부 등은 한국산연 앞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회는 "단체협약도, 투자약속도 지키지 않은 산켄전기가 원하는 대로 이대로 나갈 수 없다"며 "폐업으로 법인격이 말소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산연의 본사인 산켄전기가 있고 산켄전기 등 외투기업 철수에도 규제 방안을 외면하고 규제법안을 표류시킨 국회와 정부, 지자체가 있다"며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고 실천은 더욱 담대해지며 연대는 공고해질 것이다. 기어이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오해진 지회장은 천막농성·선전전 등에 덧붙인 향후 투쟁 방향도 밝혔다.

오 지회장은 "먹튀 외투자본을 규제할 법조차 없는 실정이다. 한국산연 문제를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시켜, 올바른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법제화 투쟁'을 벌이겠다"며 "일본에서는 시민연대가 8개 영업소 앞에서 선전전을 계속하고 있고, 후쿠시마 미즈호 사회민주당 대표가 외무성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 일본 여러 단체와 연대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도 계속해서 함께한다. 대책위는 "목요 집중행동 등을 통해 산켄전기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을 압박하며 산켄전기가 직접·경제적 제재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며 "법제화 투쟁과 관련해서도 국회 토론회, 시·도의회 건의문 채택 등을 요구하며 측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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