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개학 연기·복지시설 폐쇄
돌봄 공백 속 부모 생업 포기도
혼자 있다 화재로 숨지거나
한계 몰려 비극적 선택 속출

재난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2021년을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에서 홀로 집에 있던 10대 발달장애인이 화재로 숨졌다. 엄마가 동생을 돌보느라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코로나19로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담당했던 발달장애인 삶은 얼마나 더 가혹해졌는지 실태를 살펴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장애인 관련 시설들이 축소·폐쇄되면서 발달장애인들이 갈 곳을 잃었다. 발달장애는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합해 일컫는 말로, 신체·정신이 해당 나이에 맞게 발달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예상치 못한 감염병은 그동안 수개월 또는 수년을 배우고 익혔을 발달장애인들의 일상을 한순간에 흐트려 버렸다.

◇실종 2주째 =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은 사고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둘레길에서는 자폐가 있는 20대 남성이 실종돼 경찰이 수색 중이다. 실종된 장준호(21) 씨는 키 173㎝에 몸무게 108㎏으로 체구가 큰 편이다. 장 씨 어머니는 이날 아들이 복지 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것이 안쓰러워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모자가 산책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중증 장애로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하고, 마스크도 잘 안 쓰는 아들이 행여나 행인들에게 피해를 줄까 최대한 사람이 없는 장소로 택했을 테다.

집을 나선 장 씨는 집안에서 쌓인 스트레스와 에너지를 분출하느라 걷다 뛰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아들을 쫓던 어머니 체력이 바닥났고, 잡으러 가면 더 도망가는 장 씨 특성을 아는 어머니는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며 아들을 기다렸으나, 그 기다림은 2주가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일 고양시 김포대교 북단 한강변에서 장 씨가 실종 당시 입었던 외투가 발견됐다. 외투가 발견된 지점은 최초 실종 지점으로부터 약 100m 떨어진 출입제한 구역이지만 철책 일부가 훼손돼 출입할 수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위험 노출 =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언제든 사고를 겪을 수 있어서다.

발달장애아동을 둔 도내 한 학부모는 "실종 소식을 듣고는 남 일 같지 않아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바깥 활동을 전혀 못하는 아이를 운동시키느라 산책을 할 때면 더 외진 곳을 찾아다닌다"면서 "평소에는 아이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거나 어깨를 치고 가도 장애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해를 해줬는데, 요즘은 코로나19로 여유가 없는 탓인지 사람들 눈빛이 더 차가워진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발달장애인 실종 신고는 2016~2019년 해마다 8500건가량 접수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 1~9월 접수된 실종 신고 5507건 가운데 미발견된 건수가 34건으로 예년보다 증가했다.

경남에서는 지난해 383건이 접수됐다. 2019년에는 477건, 2018년 513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3월 제주도, 지난해 6월 광주시에서는 발달장애인을 돌보던 어머니가 자녀와 함께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특수학교 개학이 연기되고, 복지시설이 폐쇄되자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쓰지 않던 마스크를 써야 하고, 주말이 아닌데 복지관을 가면 안 되고, 운동할 시간인데 운동장을 갈 수 없는 모든 상황은 발달장애인들에게도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서울에서만 발달장애인 3명이 추락사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돌봄 공백 = 중증 발달장애인은 아동뿐 아니라 성인도 24시간 보살핌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아동은 학교에서, 성인은 관련 기관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으나 감염병이 확산하자 대부분 시설이 폐쇄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달장애인 부모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삶'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복지관, 발달재활서비스, 직업재활서비스 등 기관이나 시설이 휴관해 이용을 못 하게 된 비율이 적게는 62%(발달재활서비스), 많게는 97%(장애인복지관)에 이르렀다.

정부가 발달장애인 지원(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고자 긴급하게 4종 대책을 내놨지만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장애인 가족 3명 중 2명(66.2%)은 지원 사실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대책은 △복지기관 휴관 시 긴급활동지원급여 △발달장애인 자가격리 시 긴급활동지원급여 △부모만 자가격리 시 보호자일시부재특별급여·긴급활동지원급여 △만 18세 이하 발달장애인 유급가족돌봄휴가 제공이다.

서비스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돌봄 공백, 돌봄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 몫으로 돌아갔다. 설문 결과 응답자 5명 중 1명(20.5%)은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돌봄을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