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로 정의 세우고 민본국가 만들려 해
위정자 가득한 오늘날 사람의 도리 고민

양서나 명저를 읽고 나면 경각심과 반성을 느끼게 하고, 간담이 서늘한 교훈이 되기도 한다.

김영기 경상대 명예교수의 <남명 조식의 학문과 사상과 실천>은 권력과 암투, 음모와 배신의 역사 속에 숨겨진 남명 선생의 사상과 선비정신을 재조명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삶을 대하는 자세와 방식에 대한 통찰을 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은 사실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서는 거침없는 직설로 정의를 세우고 민본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남명 정신'이야말로 숱한 역사의 격랑과 위난 속에 조국을 지켜 온 기반이자, 우리 삶을 이끌어 온 정신적 원리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남명 선생은 평생을 학문에 전념하며 청렴결백과 경의사상을 실천한 지성인이었다. 늘 허리춤에 성성자(惺惺者)와 경의검(敬義劍)을 품고 다니면서 방울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몸가짐을 살피고 자신을 성찰했는가 하면, 불의를 칼로 베어버리겠다는 듯 경계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내 오장육부에 티끌이 생긴다면 곧장 배를 갈라 강물에 흘려보내리라"라는 선생의 시 '욕천(浴川)'에선 자신의 허물을 한 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비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선생은 상무(尙武) 사상을 겸비한 학자였다.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수많은 의병장을 길러내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공헌했을 뿐 아니라, 현실 비판가로서 때로는 군왕에 맞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거니와 훈구·척신들이 농단하던 조정을 상대로 타락한 권력과 무능을 질책하고 무기력한 서생들을 꾸짖었다. "훈척이 발호하는 난정(亂政)의 시대에 조정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매 백성은 물이요 군왕은 배라며 민암부(民巖賦)를 지었고, '백성'을 일곱 번 적는 '단성소(丹成疎)'로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암군(暗君)을 훈계"하였던 것이다.(김영기 교수의 '남명사랑' 창립 취지문 중)

그동안 주권재민을 기본으로 하는 자유민주시대로 발전해왔다지만, 민본이 위협받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는 포용의 가치는 사라지고 정파적으로 심각하게 양분되어 독선의 대립만 난무한다. 원칙과 대의를 저버리고, 더 얻고 다 차지하려 아닥치듯 시시비비만 일삼는다.

민생은 점점 도탄에 빠져들고 있건만, 각종 추문과 위선, 오만으로 점철된 위정자들의 언행이 매일같이 생중계되는 행태를 보노라면 우리의 공동체 사회를 윤리적, 정신적으로 지탱해 줄 진정한 어른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의롭고 건강한가. 미래 세대를 위한 떳떳한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비탄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는 시대를 불문하고 건전한 세상을 떠받치는 가장 핵심 가치였다는 걸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염치없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그로 인해 사람 사는 도리가 제대로 서지 않는 오늘날,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남명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시대에 부응하는 양식 있는 사람으로서의 소명은 무엇인지,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일을 도모하고자 김영기 교수께서 가칭 '남명사랑' 창립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모두 여기에 동참해 뜻을 모아보는 건 어떨까. 남명 선생의 사상과 정신적 가치를 계승하여 시대정신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일보다 더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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